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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 |
무엇보다 심사역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창업자를 설득해 투자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는 자신만의 무기가 필요하다. 이러한 무기는 이를테면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일 수도 있고 성공적인 창업경험일 수도 있으며 개인브랜드, 폭넓은 네트워크, 심지어는 빼어난 골프실력일 수도 있다.
가장 좋은 딜 소싱 방법은 유망한 회사가 투자를 받고 싶다고 스스로 찾아오게끔 만드는 것이다.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나 성공적인 창업경험, 개인 브랜드 등은 이를 위한 무기가 된다. '이 분야의 창업아이템은 무조건 어떤 회사의 특정 심사역을 먼저 찾아가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면 가장 좋다. 반대로 무색무취의 심사역이 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업계엔 특별한 자신만의 색깔이 없는 심사역이 많다. 이런 분들에겐 좋은 딜이 올 가능성이 낮다. 좋은 심사역이 되기 위해선 남들과 차별화된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특히 심사역은 이러한 본인의 '매력 어필'을 스타트업 대표와 한두 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심사역과 스타트업의 만남은 적어도 그 시작은 스피드 데이트와 같다. 심사역이 첫 번째 미팅에서 대표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면 두 번째 기회로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 만남에서 스타트업에 어떤 이유로든 '이 심사역에게 꼭 투자받고 싶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면 좋다.
더 나아가 벤처투자는 일종의 평판 비즈니스다. 심사역은 창업자들을 일선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투자사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트업 대표를 대하는 태도의 작은 부분까지 심사역 본인뿐만 아니라 투자사의 평판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최근엔 심사역의 언행에 대해 창업자들이 익명으로 공유하는 사이트도 있다. 이런 곳에 들어가보면 IR 미팅에서 집중하지 않거나 잠을 잔다든지 하는 창업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다.
또한 심사역은 스타트업의 사업에서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사업을 실행하는 것은 스타트업 대표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돋보이기보다 스타트업 대표가 성공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심사역의 역할이다. 때문에 심사과정에서 심사역은 스타트업 대표에게 겸손하면서도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심사역은 달변가보다 경청자여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심사역은 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하고 감정적으로도 안정적이면 좋다. 스타트업의 투자성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까지 수년의 세월이 걸릴 수 있다. 많은 기다림과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 벤처투자다. 특히 벤처투자는 외부적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최근처럼 불확실성이 높고 경기가 좋지 않은 시장이라면 더 그렇다. 어려움을 겪는 대표들의 고민을 함께하다 보면 감정적으로도 동화돼 심사역이 함께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의 소방수가 돼주려면 심사역이 감정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이면 좋다.
벤처투자업계에서 10년 정도 일한 필자의 경험에 비춰 심사역으로 성공하기 위해 갖춰야 할 몇 가지 조건을 이야기해봤다. 심사역은 스타트업업계에 없어선 안될 스타트업의 동반자다. 자신만의 강점과 색깔, 겸손한 태도와 장기적인 시각을 가진 실력 있는 심사역이 더 늘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