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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에 756억 유치…‘여행 슈퍼앱’ 통했다 [CEO LOUNGE]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

  • 박수호 기자
  • 입력 : 2024.02.23 15:19:03
  • 최종수정 : 2024.02.23 15:20:01
올해 1월 IB(투자금융)업계에서는 한 스타트업의 대규모 투자 유치 소식이 화제였다. 코로나19 시절 직격탄을 맞았던 여행 업체가 한번에 756억원을 투자받았다는 소식이다.

투자자 구성도 예사롭지 않다. 종전 IMM인베스트먼트, 알토스벤처스 등 국내 유명 투자회사 외 유럽에서 여행 유니콘 기업 투자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프랑스계 코렐리아캐피탈이 한국에 첫 번째 투자를 이 회사로 찜했다.

마이리얼트립 얘기다.

이동건 대표(38)가 대학교 졸업반이던 2012년 ‘현지 대학을 다니는 재학생이 소개해주는 미국 대학 투어’와 같이 차별화된 여행 경험을 제공하고자 창업했다. 재밌는 건 이 창업이 두 번째였다는 점.

“첫 번째 창업 때(대학교 3학년)는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를 만들었다 실패했어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두 번째 창업에서는 프라이머, 본엔젤스 등 창업에 성공해본 선배 기업가가 포진한 투자사를 찾아갔습니다. 시드(극초기) 투자부터 받으며 경영 관련해서 계속 코칭을 주기적으로 받았습니다. 그렇게 회사 기틀을 잡아나간 것이 지금까지 오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참고로 마이리얼트립은 ‘여행객들에게 여행의 본질에 맞는 나만의 여행을 제공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물론 지금도 하나투어나 참좋은여행 같은 여행사는 존재한다. 이 대표는 이런 회사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여행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기존의 패키지 여행사는 여행의 도매 사업자다. 항공, 호텔, 현지 랜드사와 대량으로 계약해 여행자에게 판매한다. 이런 방식은 여행 가격을 낮추는 데는 유리하나, 개별 여행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떠나기는 어려운 구조다. 30명의 그룹이 같은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이리얼트립은 다르게 접근했다. 개별 여행 상품을 여행자들이 자유롭게 탐색하고 각각 예약할 수 있는 서비스로 차별화했다.

예를 들어 마이리얼트립에서 ‘루브르 박물관 투어’를 검색하면 30개가 넘는 다양한 상품을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상품이 다양하니 개별 고객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계획하고 예약할 수 있어 이 앱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1986년생/ 고려대 경영학과/ 2010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콘크리트’ 창업/ 2012년 마이리얼트립 창업, 대표(현)

1986년생/ 고려대 경영학과/ 2010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콘크리트’ 창업/ 2012년 마이리얼트립 창업, 대표(현)



가이드 연결에서 슈퍼앱으로 진화

그는 “한국 해외여행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 지 30년이 넘은 지금, 여행자들은 더 이상 주요 관광지만 찍고 돌아오는 천편일률적인 여행을 원하지 않는다. 고객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친구 혹은 가족끼리 함께할 수 있는 여행을 원하고 있고, 마이리얼트립은 이런 여행자 트렌드에 따라 서비스를 발전시켜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 분야의 슈퍼앱’ 전략을 쓰고 있다는 점도 이번 대규모 투자 유치 비결 중 하나다. 마이리얼트립은 항공부터 숙박과 투어, 액티비티, 렌터카 등 여행에 관련된 A부터 Z까지 모두 서비스를 하고 있다. 초기 마이리얼트립은 여행지에 있는 현지 학생이나 교포 등을 여행객들과 가이드로 이어주는 서비스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항공권 예약부터 전 세계 숙박·현지의 다양한 상품까지 판매하는 종합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에는 B2B(기업 고객) 여행 서비스 사업까지 진출하며 패키지여행·출장까지 영역을 넓혔다.

투자사들도 이런 매력에 주목했다.

알토스벤처스 관계자는 “한국 여행 시장은 약 40조원 규모로 전 세계에서 8번째, 아시아에서 중국 다음인 2번째로 큰 시장이며 매년 8% 이상 빠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면서 “이런 매력적인 시장 내에서 마이리얼트립이 자유 여행자에게는 이미 독보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 여기에 더해 패키지·법인 여행 시장 진출을 통해 더 큰 성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봐서 투자했다”고 말했다.

물론 승승장구만 한 건 아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절망에 가까울 정도로 매출이 일어나지 않았다. 시장과 고객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 이때 이 대표는 오히려 대대적인 정비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위기 때 당연히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기본으로 하되 그동안 빠른 성장 중에 놓친 것이 없는지 들여다봤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떠올린 것이 기술 투자였다.

처음 창업할 때만 해도 마이리얼트립은 가이드 투어 판매에 최적화된 구조였다. 그런데 여기에 항공권, 숙박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다 보니 앱이 오류가 나거나 매끈하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다. 그런 과정에서 고객 불만도 하나둘 쌓이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앱이 활성화되지 않는 코로나19 시기에 대대적인 기술 투자를 하기로 맘먹고 투자사들을 찾아가 설득했다.

투자업계도 상황은 여의치 않았지만 코로나19 이후 다가올 기회, 이를 위한 대대적인 앱 정비를 강조한 이 대표의 절박한 요청에 VC들이 하나둘 지갑을 열었다.



코로나 때 국내 여행 강화 기사회생

빠른 의사 결정도 기사회생에 한몫했다. 코로나 직전까지 마이리얼트립은 해외여행에서 최대 지표를 찍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3개월 만에 과감하게 해외여행 대신 국내 여행 상품으로 전환하고 숨은 수요 찾기에 성공했다. 2022년 키즈 여행 플랫폼 ‘동키’ 운영사 아이와트립을 인수해 ‘마이리얼트립키즈’로 재편하면서 가족 여행 수요도 흡수했다.

이처럼 여러 차례 투자와 자금 조달, 신속한 태세 전환을 통해 마이리얼트립은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코로나 종식 후 마이리얼트립은 항공권 제로마진 정책 등으로 큰 호응을 얻으며 빠르게 사업을 확장, 지난해 누적 회원 수는 800만명, 연간 거래액 1조원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7월부터는 흑자전환에도 성공했다. 올해는 숙박 부문 제로 마진 전략으로 더욱 빠르게 고객을 늘려나가면서 거래액 2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웠다.

“올해는 영업이익을 충분히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최근 투자받은 돈은 운영자금 용도로 쓸 일이 거의 없습니다. 대신 좀 더 침투할 수 있는 시장의 가능성이 크게 열려 있는 만큼,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고 사업 실행 속도를 강화할 수 있는 영역에 자금을 사용할 예정입니다. 지난 10년간 자유 여행자들을 위한 슈퍼앱을 지향해왔다면, 올해는 국내 여행, 패키지여행, 법인 여행, 가족 여행, 인바운드 여행 등 여행의 범위를 넓혀 진정한 의미의 슈퍼앱으로서 제대로 자리 잡는 원년을 만들 겁니다.”

물론 마이리얼트립에도 숙제는 꽤 있다. ‘빅블러’ 현상으로 경쟁사가 동종업계가 아니라 구글, 오픈AI 등 빅테크 업체가 되고 있는 게 첫손에 꼽힌다.

마이리얼트립도 AI 시대를 맞아 상담, 추천 등을 해주는 ‘AI 플래너’를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보고 과감히 접었다. 이런 상황에서 구글맵 등은 예약, 여행정보 제공 등에서 점차 여행 앱을 따라잡아가고 있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여행 슈퍼앱을 표방한다면 고객 취향에 맞춘 여행 일정 추천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춰야 할 텐데 결국 AI 등 관련 전문 인재를 얼마나 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8호 (2024.02.28~2024.03.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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