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미스트랄’, 골리앗 오픈AI에 도전

2024-02-28 13:00:01 게재

생성형 인공지능 새 모델 출시 … ‘민첩성이 규모 이긴다’ 입증할지 관심

프랑스 인공지능 스타트업 ‘미스트랄AI’ 임직원들 사진출처 미스트랄AI 홈페이지
“우리는 오픈AI나 구글과 경쟁할 수 있다. 민첩성이 강점이다. 우리는 텍스트 생성 모델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소규모 팀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유럽판 오픈AI’로 주목받는 프랑스 인공지능 스타트업 ‘미스트랄AI’의 공동창업자 아르튀르 멘쉬는 26일(현지시각)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직원 34명에 자본금 5억유로인 우리는 800명의 직원과 110억유로가 넘는 자본금을 가진 오픈AI 또는 구글과 경쟁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미스트랄은 이날 새로운 대규모 언어 모델(LLM) ‘미스트랄 라지’를 출시했다. 또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챗GPT와 경쟁할 수 있는 대화형 비서 ‘르 샤(Le Chat, 프랑스어로 고양이란 뜻)’를 공개했다. 그리고 오픈AI의 최대 후원사인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이날 미스트랄AI와의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자사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Azure)를 통해 미스트랄 라지를 제공한다는 것.

구글 딥마인드에 몸 담았던 멘쉬는 “우리 모델의 성능은 특정 지표에서 구글 ‘제미니(Gemini)’나 메타(Meta)의 모델보다 뛰어나다. 그리고 미스트랄 라지는 GPT-4와도 경쟁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기술 보급에 집중하고 있다. MS와 파트너십을 맺은 이유”라고 말했다.

‘오픈AI나 구글 모델이 아닌 미스트랄의 모델을 선택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르몽드 질문에 멘쉬는 3가지 장점을 꼽았다. 그는 “우리는 가격 대비 최고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미스트랄 라지의 가격은 GPT-4보다 저렴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국어 및 문화적 측면도 있다. 현재 제공되는 생성형 AI 제품은 영어와 미국 중심인 반면, 우리는 유럽 언어를 고집하고 있다”며 “이와 함께 미국 AI기업들은 강력한 편집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델이 생산한 혐오 폭력 등의 불건전 콘텐츠를 고객들이 조정할 여지가 적다. 반면 우리는 고객기업들이 모델의 반응방식에 대해 더 큰 통제권을 갖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이외로 확산되는 생성형AI

인간과 유사한 텍스트 및 기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생성형 AI 경쟁에서 챗GPT를 개발한 미국 오픈AI는 한참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오픈AI는 ‘GPT-4’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LLM을 만들었다. 이 회사는 더 똑똑한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글로벌 인재와 데이터, 컴퓨팅 파워를 집어삼키고 있다. 그 결과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고, 더 많은 자본을 더 정교한 모델에 투입할 수 있다.

27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하지만 프랑스 미스트랄이 오픈AI에 도전장을 던졌다”며 “미스트랄 라지는 사용하는 매개변수의 수(모델 파워의 일반적인 척도)로 측정할 때 GPT-4보다 왜소하다. 그럼에도 추론과 같은 중요한 성능 측면에서는 GPT-4에 거의 필적한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미스트랄의 존재는 글로벌 AI업계가 점점 더 개방적으로, 점점 더 미국 밖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라며 “미스트랄의 멘쉬는 ‘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창의적이고 빠른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스트랄이 오픈AI에 중대한 도전이 된다면, 이는 생성형AI에서 규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업계 일부의 주장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미스트랄은 ‘매서운 북풍’이라는 뜻에 걸맞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설립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고 직원수는 25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미스트랄 LLM은 오픈소스 모델을 선도하고 있다. 누구나 공개적으로 사용 가능하며 누구나 수정할 수 있다. GPT-4의 경우 활용된 데이터,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코드 등을 제3자가 확인할 수 없다. 때문에 ‘블랙박스’로 불리기도 한다.

이 덕분에 미스트랄은 4억9000만유로 투자금을 유치했다. 현재는 20억유로(약 2조8900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주요 투자자로는 앤드리슨 호로위츠, 미국 벤처투자기업 ‘제너럴 캐털리스트’ 등 실리콘밸리 주요 벤처투자자들과 구글 전 최고경영자 에릭 슈미트 같은 기술분야 유명인사들이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미스트랄이 AI의 주요 기술적 요소인 인재, 데이터, 컴퓨팅 파워를 정치와 절묘하게 결합한 덕분에 초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짚었다.

우선 인재의 경우, 프랑스 AI 기업 ‘더스트(Dust)’의 공동설립자 스타니슬라스 폴루는 “프랑스 공학 교육과 미국 빅테크기업이 ‘천생연분’을 이룬 곳이 바로 미스트랄”이라고 말했다. 미스트랄 창업자 6명 중 3명에 속하는 멘쉬와 티모테 라크루아, 기욤 램플은 프랑스의 엘리트 기술학교 출신이다.

최고의 AI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미국의 거대 기술기업인 구글과 메타 연구소에서 일했다. 하지만 이들은 런던이나 실리콘밸리가 아닌 파리에 있는 연구소에서 LLM을 쌓고 있었다. 이들은 최첨단 모델을 훈련하는 방법에 정통한 전세계 100명 안팎의 사람들에 속한다.

둘째 미스트랄이 모델학습을 위한 데이터 수집에 능숙하다는 점이다. 멘쉬는 미스트랄이 정확히 어떻게 훈련세트를 선별하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이를 회사의 경쟁우위라고 말했다. AI업계 관계자들은 미스트랄이 반복적이거나 의미가 없는 정보를 걸러내는 등 큐레이션(자료의 수집 분류 구조화)에 있어 “정말 영리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덕분에 미스트랄의 모델은 훨씬 더 작아질 수 있었다. 미스트랄 모델의 통계적 가중치, 즉 ‘파라미터’는 수십억개인 반면 오픈AI의 GPT-4는 약 1조8000억개로 추정된다. 따라서 고객들은 방대한 데이터센터가 아닌 자신의 컴퓨터에서 이를 실행할 수 있다.

멘쉬에 따르면, 미스트랄은 데이터 큐레이션에 집중하기 때문에 AI의 3번째 중요한 요소인 컴퓨팅 성능을 경쟁사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미스트랄의 최신모델 훈련비용은 2000만유로(약 290억원) 미만으로, 오픈AI가 GPT-4를 개발하는 데 들인 1억달러(약 1300억원)보다 훨씬 저렴하다. 또한 미스트랄의 접근방식은 고객이 자체 데이터로 모델을 미세조정하고 이를 실행하는 데 드는 비용도 줄일 수 있게 한다.

독일 벤처투자기업 ‘라 파밀리아’의 공동창업자 자네트 주 퓌르스텐베르크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미스트랄과 같은 스타트업은 오픈AI 등 선발주자들이 해온 모든 작업의 혜택을 누리는 ‘후발주자 이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스트랄의 공동설립자 중에는 프랑스 디지털전환 국무장관을 지낸 세드릭 오가 있다. 세드릭 오 전 장관은 AI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직통전화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의 AI법 초안으로 미스트랄이 데이터 수집 비결을 공개해야 할 상황에 놓였을 때, 세드릭 오 전 장관은 마크롱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으로 초안의 해당 조항을 폐기토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많은 국가들은 자국에서 개발한 LLM이 경제적 전략적 이점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미스트랄의 경우 기술적 우위가 그같은 정치적 상황에서 배가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차세대 GPT-5가 성패 가를듯

이제 지켜볼 대목은 미스트랄이 기술-정치적 요소 조합을 수익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미스트랄은 유럽의 많은 고객기업들이 오픈AI가 제공하는 것보다 더 많은 통제권을 원하고 있다는 점, 미국 기술플랫폼에 종속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점에 승부를 걸고 있다”며 “그같은 점이 보장된다면, 유럽 고객들은 기꺼이 미스트랄에 비용을 지불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생성형 AI에서 규모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멘쉬의 주장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에 대한 판단은 오픈AI가 차세대 모델 ‘GPT-5’를 출시하고 나서야 내려질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만약 미스트랄-라지를 비롯한 다른 소규모 오픈소스 모델이 GPT-5에 밀린다면, 규모가 아니라 창의성과 속도가 중요하다는 멘쉬의 이야기는 공허하게 들릴 것”이라며 “하지만 그전까지는 미스트랄의 이야기가 계속 회자될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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