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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계열 VC 톺아보기]M&A로 성장한 하나금융, VC만 왜 자체 설립했을까①금융지주 첫 신규 출범 사례...수익 다각화 목적 아닌 그룹 전방위 활약 '별동대' 미션

이기정 기자공개 2023-10-19 09:12:57

[편집자주]

2017년까지만 해도 은행 계열 벤처캐피탈(VC)은 KB인베스트먼트 한 곳에 불과했다. 2018년부터 금융지주사가 수익 다각화 차원에서 VC를 신규로 설립하거나 M&A에 나섰다. 올해 우리금융지주가 다올인베스트먼트를 인수하면서 주요 금융지주사는 모두 VC를 계열사로 거느리게 됐다. 금융지주 산하 VC는 은행이라는 강력한 계열사의 지원을 등에 업고 빠른 속도로 AUM을 키워나가며 업계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더벨은 약진하고 있는 은행 계열 VC의 성장 전략과 차별화 포인트를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3년 10월 17일 07:2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하나벤처스는 5대 은행지주 산하 벤처캐피탈(VC) 가운데 처음으로 자체 설립됐다. 하나금융그룹은 2018년 300억원을 투입해 하나벤처스를 설립했다. 또 이듬해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1000억원까지 늘렸다.신한금융지주가 2020년 네오플럭스(현 신한벤처투자)를 약 700억원대 규모로 인수한 것을 감안하면 하나금융지주는 하나벤처스 설립 자본금으로만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입했다.

하나금융그룹은 규모의 경제를 갖춘 VC를 인수할 여력이 충분했음에도 VC를 자체 설립하는 안을 선택했다. 금융지주 체제 출범 이후 자체적으로 VC를 설립하는 것이 첫 케이스라 하나벤처스의 탄생에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하나금융지주는 왜 VC 인수라는 쉬운 길을 두고 자체 설립의 길을 갔을까.

여타 금융지주는 계열사로 벤처 캐피탈(VC)를 추가하면서 수익 다각화를 내세웠다. 하나금융지주는 달랐다. 하나금융의 목표는 하나벤처스를 통해 미래 금융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것이었다.

◇14곳 계열사 중 유일 100% 출자 설립...타금융그룹 VC 설립 '마중물'


2018년 당시만 하더라도 은행지주 가운데 VC를 보유한 곳은 KB금융그룹이 유일했다. 다만 KB인베스트먼트 역시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운 경우다. 이어 2019년 NH농협금융그룹에서 NH벤처투자를 선보이며 자체 설립 VC 대열에 합류했다.

하나금융그룹 관계자는 "하나벤처스는 14곳의 하나금융 계열사 중 유일하게 그룹의 100% 출자로 만들어진 자회사"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결정은 그동안 하나금융이 M&A(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해 온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하나금융그룹의 전신은 1971년 설립된 한국투자금융이다. 1991년 하나은행 창설 후 1998년 충청은행, 1999년 보람은행, 2002년 서울은행을 인수합병하면서 규모를 키웠다.

이어 2004년 청도국제은행과 2005년 대한투자증권을 인수하며 같은해 하나금융그룹을 공식 출범했다. 이후에도 하나금융은 길림은행, 다올신탁, 다올자산운용, 한국외환은행 등을 인수합병했다.

하나벤처스의 설립 과정에서도 인수합병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시 입맛에 맞는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다. 향후 신한금융그룹에서 인수한 네오플럭스가 매물로 나와 인수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포트폴리오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같은 자금을 투자한다면 하나금융의 색깔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처음부터 만들어가겠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지주는 서로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에 다른 지주의 행보에 촉각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며 "KB인베스트먼트가 먼저 생겨난 것은 맞지만 2010년대 후반 하나금융의 VC 설립 결정이 신한금융지주나 NH금융지주에서 VC 진출을 본격화하는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금융 이끌 적임자, '기술력·고객 확보' 두마리 토끼 노린다

하나금융은 미래 금융시장에서 VC의 중요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내리고 VC를 설립했다. AI(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금융과 연계한 기술이 고도화되고 있지만 금융사에서 자체적으로 관련 기술을 확보하는데에는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또 보수적인 은행 조직의 특성상 성장성만 보고 자금을 투입하는데 무리가 있었다. 기존 하나증권과 하나카드, 하나캐피탈에서 유사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VC와 비교해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하나벤처스를 설립한 주요 배경 중 하나다.

하나벤처스 설립에는 혁신 창업 생태계에 진출하겠다는 김정태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김 전 회장은 하나벤처스 인력을 철저하게 외부에서 수혈하라고 주문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김 전 회장은 하나벤처스 출범식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중소·벤처기업에게 달려 있다"며 "하나금융은 이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의 전략을 구체화하는 임무는 하나벤처스의 2대 대표로 지난 3월 취임한 안선종 대표가 맡았다. 안 대표는 당시 그룹 전략기획팀에서 근무하며 VC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KB인베스트먼트 등 다른 VC들로부터 정보를 모으는 한편 금융당국을 설득해 VC 설립 허가를 이끌어냈다.

하나금융은 신기술사업금융전문화사 설립으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후 주요 경영진 선정과 인력 모집 등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때 영입한 인물이 김동환 전 하나벤처스 대표다. 김 전 대표는 골드만삭스와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을 거친 업계 전문가다. 이를 시작으로 강훈모 하나벤처스 상무 등 핵심 인력들이 속속 합류했다.

안선종 대표는 "과거 은행이 노동 집약적인 집단이었다면 이제는 기술의 중요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라고 판단했다"며 "기술력을 갖춘 기업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스타트업과 동반 성장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은행의 스타트업 지분 투자가 당연한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며 "우리나라 은행도 대출에서 지분 투자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첨병이자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VC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어필했다"고 덧붙였다.

◇계열사 시너지 창출 '가교' 역할 기대, 경영 자율권 보장 모험투자 DNA 극대화

하나금융은 하나벤처스와 다른 계열사들의 시너지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하나벤처스에서 유망기업을 발굴, 초기 투자를 진행하면 하나카드와 하나캐피탈 등에서 성장을 보조한다. 이후 하나증권에서 IPO(기업공개) 주관을 맡는 구조다.

초기 투자한 스타트업의 성장으로 하나금융 계열사들은 자연스레 우량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하나벤처스는 이같은 구조를 구축함에 있어 마중물이자 가교 역할을 담당한다. 자율권을 부여받아 그룹 전방위에서 활약하는 일종의 '별동대' 역할을 맡은 셈이다.

하나벤처스는 하나금융 계열사 중 유일하게 외부 인력만으로 만들어졌다. 직원들은 모두 VC업계 출신의 전문가다. 이는 보수적인 은행 문화 영향을 최소화하고 위험 자본에 투자하는 VC의 DNA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하나금융은 경영 부문에서도 하나벤처스에 관여를 자제하고 있다. 특히 김정태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을 거쳐 현 함영주 회장 체제로 수장이 교체되는 과정에서도 같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VC 대표는 하나금융그룹 내부 인물을 낙점했다.

이달 창립 5주년을 맞은 하나벤처스는 운용자산(AUM) 8500억원에 달하는 중견 VC로 성장했다. 운용중인 펀드는 18개로 153개 기업에 누적으로 4000억원이 넘는 투자를 진행했다. 내년에는 추가 펀드 결성을 통해 AUM 1조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나벤처스는 수장 교체로 올해 상반기 잠시 정비 시간을 가졌다. 안 대표는 VC업계 직접적인 경력은 없지만 하나벤처스 설립을 주도하며 그룹 내 VC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안 대표는 함영주 회장 체제 속에서 당초 본인의 계획대로 하나벤처스를 성장시켜야 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하나벤처스 관계자는 "인수합병을 통해 설립된 다른 은행지주 VC와 비교해 아직 규모나 업력 측면에서 따라잡아야 할 부분이 많다"며 "하나벤처스만의 강점을 살려 욕심내지 않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VC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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