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등 첨단기술기업에 단수 기술평가 허용
부실기업 상장 가능성 우려...거래소 "엄격 심사"
환매청구권 부여 등 증권사 책임 강화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민관합동 관계기관 회의를 통해 '기술특례상장 제도개선 방안'을 최종 확정해 발표했다. 기술특례상장은 기술의 혁신성이나 기업의 성장성을 인정받은 경우 최소 재무 요건만으로 상장 심사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특례를 부여하는 제도다. 2005년 제도 도입 이후 현재까지 150개사가 기술특례로 상장했다.
이번 방안은 인공지능, 2차전지 등 첨단기술 기업과 상장 재도전 기업에 단수 기술평가를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2개의 전문평가기관으로부터 A등급, BBB등급을 받아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즉 매출·영업이익 등 재무적 요건을 세세히 따지는 일반 상장과 달리 기술과 성장성 등 질적 요건을 위주로 심사하기 때문에 첨단기술 기업으로서는 부담이 크게 줄게 된다. 재무적 요건은 자기자본 10억원 이상 또는 시가총액 90억원 이상 등 최소 재무 요건을 충족하면 상장 심사 신청을 할 수 있다.
벤처·스타트업 업계는 이에 환영하는 모습이다. 1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벤처기업협회 등은 "현재 소재·부품·장비 업종에 대해서만 허용되던 단수 기술평가 대상이 딥테크·딥사이언스 등 첨단·전략기술 분야 기업까지 확대됐다"며 "혁신 기업에 대한 상장 활성화를 지원해 모험자본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나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입장을 냈다.
반면 문호 개방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경준 혁신IB자산운용 대표는 "단수 기술평가 적용 대상이 확대된 건 맞지만 체감적으로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일반적으로 한 곳에서 높은 등급을 받고 다른 곳에서 낮은 등급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올해 2월 거래소가 표준기술평가모델을 도입하면서 평가등급 편차가 이미 일정 부분 해소된 면도 있다. 기술평가를 실시하는 전문평가기관 24곳이 제각각 평가할 때는 2등급 이상 편차가 발생한 사례도 종종 나타났지만 표준모델이 도입된 뒤에는 탈락 기업 중 등급 차이를 보인 곳은 없었다.
이 대표는 "좋은 기업은 기술평가를 1곳에서 받든 2곳에서 받든 상관 없다. 부실한 기업이 '어쩌다가 우연히' 하나 받는 경우가 문제"라며 "(상장) 문을 여는 게 다 좋은 건 아니다. 무작정 상장시키는 게 과연 좋은 건지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상장 문턱을 낮춘다는 게 심사요건이 아닌 신청요건을 완화한 것"이라며 "심사는 기존처럼 엄격히 진행된다. 거래소 입장에서는 신청 기업이 많아져 업무가 과중해졌다"고 설명했다.
당국은 기술특례상장 기업의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장치도 마련했다. 기업이 상장 후 2년 내에 부실화될 경우 해당 기업 상장을 주관한 증권사가 이후 기술특례상장을 주선할 때 6개월 환매청구권(풋백옵션)을 부과한다. 환매청구권이란 상장 이후 주가가 공모가의 90%를 넘지 못할 때 해당 주식을 주관사가 매입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이 대표는 "웬만한 기업의 주가는 6개월 안에 90%를 한번쯤 다 넘긴다. 6개월을 기다렸다가 환매청구권을 행사할 투자자가 얼마나 되겠나"라며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인 건 맞지만 현실적으로 크게 의미가 없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세훈 금융위 사무처장은 "기술특례상장 제도가 자본시장 투자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옥석'을 가려낼 수 있는 선별 기능을 강화하고 상장 주관사의 책임성도 제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