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거버넌스 해치지 않기 위한 방법·3자 매각시 승계 부분은 논의 지속해야

투자 기관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관행적으로 계약 조건에 포함해온 '사전동의권'을 둘러싼 소송이 발생하면서 사전동의권이 벤처투자 업계 화두가 되고 있다. 대법원 판단에 따라 투자자들의 사전동의권은 계속 인정되는 방향으로 결론날 것으로 보이지만 투자자와 피투자자가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사전동의권이 활용되기 위해 관련 논의가 계속해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법무법인 미션과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 운용사),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더프론티어 등은 최근 '투자계약상 경영동의권과 스타트업의 거버넌스' 포럼을 공동 주최했다. 최근 대법원이 투자자의 사전동의권에 대해 선고한 판결을 해설하고 사전동의권에 대한 토론을 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해당 포럼에는 김성훈 법무법인 미션 대표 변호사와 옥다혜 변호사를 비롯해 여러 벤처투자 관련자들이 참여했다. 김초연 빅베이슨캐피탈 책임심사역, 홍남호 오프라이트 대표는 투자자와 피투자자 입장에 양측의 관계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진석 한국벤처투자 벤처금융연구소 소장을 비롯해 서광열 코드박스 대표, 전석철 S&S인베스트먼트 전무 등은 사전동의권 토론자로 나섰다.


◆사전동의권, 투자자-피투자사 이해관계 상충되지 않아


사전동의권은 투자자의 '안전장치'로 여겨진다.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 운용사 등 비상장기업에 주로 투자자하는 투자자는 피투자사의 정보를 자세히 파악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기존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고 후속투자를 받는 경우 기존 투자자는 지분율이 희석될 수 있다. 회사의 주요 구성원이 갑작스레 사임하거나 사업방향성을 완전히 바꿀 경우에도 투자자가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김초연 심사역은 "스타트업 투자는 상장사 투자와 비교했을 때 정보가 부족하고 위험성이 높은 만큼 '투자자의 사전 동의권'은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사전동의권이 벤처기업 경영관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점도 있다. 벤처캐피털별로 사전동의권에 포함하는 세부 조건이 다르고 결정을 내리는 시기가 달라 회사의 주요 결정이 늦춰질 수 있다는 점이다.


김성훈 변호사(사진)는 "사전동의권의 핵심은 비토권이다"며 "20개 투자사 중 1개사만 반대해도 회사의 중요 사항에 대한 의사결정이 늦춰지거나 무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남호 대표는 "좋은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스톡옵션을 발행해야 하는데 발행가액과 관련해 투자자와 스타트업 간에 이견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사전동의권에 대해 투자자와 피투자자의 이해관계가 상충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나왔다. 우리나라 스타트업 투자는 대부분 정책자금을 바탕으로 한다. 벤처캐피털은 자기 자본이 아닌 정부자금과 민간자금으로 결성한 펀드로 투자한다. 결국 투자금이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는지 잘 확인하는 것이 투자 활성화에 도움 된다는 설명이다.


전석철 전무는 "스타트업 경영자가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이지만 다른 영역은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며 "회사가 상장까지 가기 위해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전동의권이 있는 주주가 경영에 조언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벤처캐피털에는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가 있다"며 "정책자금으로 만들어진 펀드의 경우 특정 사업 분야에 투자해야 하는 조건이 있는 만큼 회사가 사업 방향성을 갑작스레 바꿔 주주가치를 훼손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광열 대표 역시 "투자자에게 사전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많은 조언을 받는 만큼 사전동의권이 빠지는 게 스타트업에게 반드시 이익은 아니다"며 "투자자 보호가 약해져 벤처투자가 동력을 잃게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 결말"이라고 밝혔다.


◆사전동의권 남은 쟁점은


사전동의권이 투자자와 피투자사 모두에게 필요한 장치는 맞지만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논의가 지속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투자한 개별 투자자마다 사전동의를 받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한 투자자 입장에 따라 스타트업의 경영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한 스타트업이 2000억원의 기업가치로 후속투자를 유치하려 하는데 앞단에 투자 후 후속투자에 참여하고 싶은 투자자가 2000억원의 기업가치가 부담스러워 투자를 반대하는 사례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동일한 투자 단계에 들어온 투자자들의 과반 동의로 사전동의권을 정리하거나 보유한 지분 비율에 따라 동의권을 행사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나왔다. 김성훈 변호사는 "현 투자 계약은 스타트업 거버넌스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사전동의권과 거버넌스 대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투자 단계별로 사전동의권을 취급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스타트업 창업 초창기에는 투자자들에게 경영 조언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회사가 경영자가 성숙해지면 투자자가 스타트업의 판단을 더 존중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사전동의권이 담긴 상환전환우선주(RCPS)가 제3자에게 매각될 경우 사전동의권도 함께 승계되는지 여부도 논의해야 한다. 현재는 투자자 간 구주 매각 계약을 체결할 때 당초 투자계약상의 권리를 함께 승계한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구주를 매입한 투자자가 세세한 사업동의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신주를 인수한 투자자와 구주를 인수한 투자자의 권리에는 차이가 있는 게 벤처투자 업계 일반적인 관행이다.


이진석 소장은 "구주 계약 후 사전동의권을 행사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계약 조건과 실무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고 봤다.


전석철 전무는 "구주를 인수하는 투자자의 경우 투자자 권리를 상당 부분 포기하는 편"이라며 "그럼에도 태그얼롱(동반매도청구권) 등 주주가치 훼손을 방지할 수 있는 조건은 긴밀하게 살펴본다"고 말했다.


김성훈 변호사는 "대법원이 뉴옵틱스와 틸론 관련한 판결에서 승계권 조항의 존재는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구주를 경쟁사에게 팔았는데 사전동의권도 함께 승계되면 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이진석 소장, 서광열 대표, 전석철 전무, 김성훈 변호사


◆'주주가치 희석'과 관련한 사전동의권 반드시 필요


뉴옵틱스와 틸론의 사전동의권을 둘러싼 소송(관련기사: 대법원, 틸론 RCPS 분쟁 파기환송...뉴옵틱스 勝)에 많은 벤처캐피털이 관심을 보였다. 만약 대법원이 사전동의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기존에 쓴 계약서를 전부 다시 써야 했고 새로운 대안이 나오기까지 신주계약서를 작성하는 게 어려워 신규 투자가 전면 중단될 가능성이 있었다.


국내 주요 정책기관 출자자인 한국벤처투자 벤처금융연구소는 사전동의권 판결이 벤처투자생태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해 벤처캐피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진석 소장은 "한국벤처투자가 많은 설문을 했지만 이번 설문만큼 응답률이 높았던 적은 없었다"며 "그만큼 많은 투자자가 이번 판결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총 9개 문항으로 구성된 설문조사에는 344명의 벤처캐피털이 참여했다. 벤처캐피털이 가장 많이 사전동의권을 행사한 항목은 '유무상증자 등 자본의 증감, 주신관련 사채 콜옵션'이 꼽혔다. 피투자사가 후속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분율 변화와 피투자사 기업가치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사전동의권 항목 중 가장 필요한 항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과도 연결됐다. 설문 참석자의 48.7%가 유무상증자 등의 자본과 관련된 항목이 사전동의권에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회사 및 이해관계자의 주식처분이 뒤를 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벤처캐피털은 이외에도 '사전동의권을 막으면 투자가 위축될 것' '사전동의권은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사전동의권으로 스타트업의 법적 분쟁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고 주요한 경영활동을 사전확인해 조직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한국벤처투자 벤처금융연구소 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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