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송하린 기자 = 국내 중소형 자산운용사 가운데 첫 싱가포르 진출 사례가 나왔다. MZ세대로 이뤄진 신생사 '피보나치자산운용'이 그 주인공이다.

글로벌 금융중심지 중 하나인 싱가포르는 앞서 진출한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불모지다. 피보나치자산운용의 싱가포르 진출을 추진한 윤정인 대표는 '가장 한국적인 운용'으로 싱가포르 시장에서 차별화를 시도하겠다는 포부다.

윤정인 피보나치자산운용 설립자 겸 싱가포르 법인 대표


◇국내 중소형 운용사 첫 싱가포르 진출, 어떻게 추진했나

30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피보나치자산운용의 싱가포르 법인인 '피보나치 에셋 매니지먼트 글로벌'은 지난달 12일 싱가포르 통화감독청(MAS)으로부터 'RFMC(Registered Fund Management Company)' 라이선스 인허가를 받았다.

싱가포르 진출을 추진한 지 1년 4개월 만에 법인 설립부터 인허가까지 이루어냈다.

라이선스 취득 과정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통상 싱가포르에서 RFMC 라이선스를 받기까지는 6개월 걸린다고 했지만, 최근 들어 조건이 까다로워지며 라이선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예를 들어 MAS 공식사이트에서는 RFMC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위한 인적 조건으로 최소 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정규 직원이 최소 2명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MAS는 비공식적으로 포트폴리오 운용뿐만 아니라 준법감시인, 오퍼레이션, 리스크관리 등 4가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직원 구성을 갖출 것을 요구했다. 사실상 정규 직원 3~4명이 필요한 조건으로, 고정비가 늘어난다는 측면에서 중소형사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다행히 피보나치자산운용은 의도치 않게 '비장의 카드'를 보유하고 있었다. 지난 2월 싱가포르 현지에서 채용한 마 리(MA RI)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컴플라이언스, 리스크관리, 오퍼레이션 경력이 모두 있었던 덕분에 윤 대표를 포함한 정규 직원 2명으로도 MAS가 제시한 비공식적 라이선스 조건을 충족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한국 연결다리 꿈꾼다…"한국시장 투자하고 싶다면 피보나치"

윤정인 대표는 사세를 빠르게 확장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외 진출을 추진했다. 삼성증권, 한국 모건스탠리, 도이치증권 런던 본사 등을 거친 윤 대표를 비롯해 전원 30대 젊은 인력들로 채워진 피보나치자산운용은 지난 2020년 설립된 신생 자산운용사다.

윤 대표는 "싱가포르는 헤지펀드 시장 규모가 약 1천200조원 이상으로 한국보다 30배 넘게 큰 거대한 시장"이라며 "피보나치자산운용이 제대로 된 운용사로 생존하려면 펀드 운용자산(AUM)가 늘어나야 하는데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게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싱가포르, 두바이, 홍콩 같은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첫 해외 진출지로 싱가포르를 낙점한 건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그는 "홍콩은 이미 대형 운용사가 아니면 뚫기 어려울 정도로 펀드시장 규모가 싱가포르보다도 배 이상 크고, 두바이는 운용사 개수가 많지 않고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 자금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소형 플레이어들이 들어가기 어려운 시장"이라며 "싱가포르는 5년 연속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을 하는 등 성장세가 가파르면서도 소형 플레이어도 싸워볼 만한 시장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윤 대표는 '가장 한국적인 운용'으로 싱가포르 투자자들을 매료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싱가포르는 10조원이 넘는 펀드가 흔한데, 그 정도 규모라면 국내총생산(GDP) 비중 상 한국 시장에도 투자해야 하지만 싱가포르 내 한국인 매니저나 한국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운용사가 별로 없다"며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글로벌화되겠다는 목적으로 싱가포르 등 해외에 나가며 미국이나 중국 자산을 거래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한국 자산 중심으로 전략을 세웠더라면 성과가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분명한 건 싱가포르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이미 7개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는데 이 전략을 계량해서 싱가포르에서 한국 관련 주식과 채권 등으로 구성된 펀드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주식시장은 일반적인 투자 상식과 벗어난 현상이 종종 발생하곤 해 투자하기 까다로운 지역으로 인식되곤 한다. 최근 에코프로 주가가 대표적이다. 에코프로 주가가 증권가에서 산출한 기업가치를 넘어서자 싱가포르와 홍콩 매니저들은 '숏(매도)' 포지션을 잡았다. 하지만 2차전지 업종 대유행으로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한국 시장을 다루던 펀드 매니저들이 다수 옷을 벗었다는 소문도 들렸다.

윤 대표는 "한국인의 존재가 전무한 싱가포르 시장에서 '한국에 투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라는 질문에 '피보나치자산운용에 가봐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며 "투자할 곳은 별로 없는데 자금이 넘치는 싱가포르와 투자할 곳은 많은데 자금이 부족한 한국을 연결해 한국 자본시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hr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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