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자금이 마른다 … 고금리·경기침체에 투자 급랭

2023-03-29 12:28:22 게재

2월 신규 투자 1년전보다 75.2% 감소

지난해 3분기부터 투자 감소세 뚜렷

정부 활성화대책에도 회복 기미 안보여

"모태펀드 확충해 VC 투자 유도해야"

벤처투자 빙하기가 도래했다. 국내외 벤처투자시장이 크게 위축됐다. 벤처투자 결성액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정작 필요한 곳으로 자금이 흘러가지 않고 있다.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초기 창업기업)의 돈줄이 마르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3고(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등 경제불확실성이 커진 탓이다. 윤석열정부가 벤처투자 마중물 역할을 하던 모태펀드를 줄여 벤처투자심리를 더욱 악화시켰다. 정부가 각종 정책을 쏟아내지만 효과가 보이지 않는 이유다.

28일 스타트업 민관협력 네트워크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2월 신규 벤처투자금액은 2952억원이다. 1년전(1조1916억원)보다 75.2%나 줄었다. 투자 건수도 140건에서 92건으로 48건 감소했다. 1~2월 누적 투자규모는 5531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2조8322억원에 비해 80.4% 급감했다. 집행된 신규투자 건수(232건)도 지난해보다 10% 줄었다.

전문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츠(CB Insights)가 분석한 글로벌 벤처투자도 2021년 4분기 1782억달러를 기록하며 정점에 도달한 후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2022년 3분기 벤처투자는 745억달러로 전분기 1126억달러보다 34% 감소했다. 1년전(1640억달러)과 비교하면 55% 하락했다.


2022년 기준 미국 벤처투자액은 2383억달러로 1년전(3447억달러)보다 30.9% 하락했다. 이스라엘도 140억달러에서 236억달러로 40.7% 감소했다.

◆VC 대형투자 줄여 = 국내 벤처투자시장은 지난해 3분기부터 위축되기 시작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벤처투자동향에 따르면 2분기(1조9315억원)까지는 투자액이 계속 증가하며 최대실적을 경신했다. 3분기에 들어서자 2분기대비 38.6% 감소했다. 4분기 투자는 1조381억원으로 3분기보다 43.9% 줄었다.

시장경색 이전에 검토하던 투자 건들이 상반기까지 집행된 반면 3분기 들어서 고물가와 고금리 등이 벤처투자시장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벤처캐치탈(VC)이 대형투자를 줄인 게 투자실적 하락으로 이어졌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올 2월까지 누적 투자를 분석하면 100억원 이상 투자는 6건에 그쳤다. 반면 10억원 이상 투자는 32건, 10억원 미만과 비공개 투자는 54건이었다.

지난해 벤처투자도 마찬가지다. 업력별로 살펴보면 창업 초기기업(업력 3년 이하)에 대한 투자가 유일하게 증가했다. 초기기업 투자는 전년대비 7.8%(1452억원) 늘어난 2조50억원으로 최초로 2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중기(업력 3~7년)와 후기(업력 7년 초과)기업 투자는 각각 21.6%, 13.3% 감소했다. 대규모 투자에 따른 위험을 회피한 결과라는 게 VC업계의 분석이다.

정부가 모태펀드 예산을 급격히 줄인 것도 벤처투자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모태펀드는 정부가 VC 등으로 구성된 투자조합에 출자를 하고 이를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중기부의 올해 모태펀드 예산은 3135억원이다. 지난해보다 40% 가까이 감소했다. 2020년과 비교하면 70% 이상 쪼그라들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벤처투자시장의 마중물로 불리는 모태펀드를 줄인 것은 투자심리를 더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모태펀드 감축 투자심리 악화 = 중기부도 "벤처투자 여력은 충분하지만 경기 불확실성으로 인해 벤처캐피탈들이 투자집행을 유보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실제 2022년 벤처펀드 결성액은 10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다. 투자여력은 11조3000억원에 이른다.

중기부는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11월 대책을 내놓았지만 꺽어진 투자심리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VC업계는 벤처투자 경색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했다.

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가 올해 초 국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AC)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83%가 올해 초기 창업투자 산업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중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답변이 54.1%로 절반을 넘었다. 지난해와 여건이 같을 것이라고 답한 AC는 7.4%에 그쳤다.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과 크레딧스위스(CS) 사태 등이 벤처투자업계의 투자심리를 더욱 위축시켰다.

문제는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먼저 정부가 활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영하 엔젤투자협회 회장은 "한국 성장잠재력이 하락하고 있는 지금 정부가 미래투자에 나서야 한다"면서 모태펀드 예산 회복을 요구했다. 고 회장은 "정부가 비올 때 우산을 거두지 말라"며 "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멈춰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모태펀드 투자로 벤처투자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줘 VC들이 드라이파우더(펀드 조성 후 집행하지 않은 자금)를 소진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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