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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B 사태에 韓 스타트업 자금 조달도 빨간불

[SVB 파산 나비효과]⑤
SVB파산·CS 사태에 시장 유동성 ‘뚝’
유동성 가뭄에 성장기업들 줄줄이 고사 우려...생태계 무너질라
더딘 정부 지원에 애타는 속사정

[이코노미스트 마켓in 지영의 기자] 국내 초기 성장 단계 기업들이 자금조달 난항에 줄줄이 고사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고금리 여파가 지속돼 악화된 시장 환경에 실리콘밸리(SVB) 파산에 이어 크레디트스위스(CS) 위기가 잇따라 터지면서 말라가던 시장 유동성이 뚝 끊겨버렸다는 평가다. 특히 벤처캐피탈과 스타트업에 특화한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 여파로 유사한 모델을 도입하려던 국내 움직임마저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우는 아이 뺨 때린 격”...감소하는 투자, 성장기업 자금난 심화

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가 올초 국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AC) 375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3%가 올해 초기 창업투자 산업이 어려울 것이라고 응답했다. 세부적으로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응답이 28.9%(39명), 어려울 것 같다는 답변이 54.1%(73명)를 기록했다. 지난해와 여건이 같을 것이라고 답한 AC는 7.4%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초기 기업들의 사정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는 얼어붙은 시장 속에 투자재원 확보 여건이 더 악화됐기 때문이다. 초기 스타트업들의 시리즈A 투자 유치는 ‘데스밸리(Death Valley·죽음의 계곡)’라고 불릴 만큼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고금리 여파로 금융시장 여건이 비우호적인 시기에 민간 투자유치 시장으로 나오면 제 아무리 유망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라도 줄줄이 쓰러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 정부의 투자지원마저 크게 줄어들면서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으로 흐르는 자금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모태펀드 예산은 3135억원으로 지난해 5200억원에서 40% 감축됐다. 이미 지난해에 모태펀드 감소가 예고되면서 벤처투자 규모는 감소세를 보이는 추세였다. 올해들어서는 감소세가 더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지난달 스타트업 투자금액은 29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964억원(75.23%)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벤처기업과 스타트업 전문 은행인 SVB가 무너지면서 투자자들이 성장기업 투자를 꺼릴 것이라는 우려도 크게 높아졌다. 위험자산 투자를 줄이는 분위기 속에 성장기업 투자가 제일 먼저 줄어들 것이라는 평가다. 

한 AC 대표는 “국내 시장 영향은 크지 않다고들 하지만 초기 기업들에게는 우는 아이 뺨을 때린 격”이라며 “이미 지금 시장 분위기가 더 지속되면 올해를 못 넘기는 기업들을 줄줄이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시장 자금 마르는데 정부 지원금은 연체...초기 기업들 답답한 속사정

정부의 스타트업 육성 지원책에 기대보기도 쉽지 않다. 정부가 운영하는 대표적인 초기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의 경우 해마다 지원금 지급 연체 문제가 빈번히 발생해 초기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파악됐다. 팁스는 유망 기술을 보유한 초기 기업 육성을 위해 사업화를 위한 초기 투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수혜 대상으로 선정 되면 기업별로 최대 5억원의 연구개발비(R&D) 및 창업사업화 자금 1억원, 해외마케팅 비용 1억원 등을 지원받게 된다.

팁스는 도입 10년차를 맞은 오래된 사업임에도 고질적인 지원금 연체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지급되어야 할 지원금이 평균 2~3개월 연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원금 지급 전까지 정부 부처 및 직접적 관리 기관 간에 거치는 행정 절차가 길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기재부의 예산 승인 및 배정 과정에서 지연이 자주 발생하는 데다, 중기부나 관리기관인의 배정·결재 지연이 몇 차례만 발생해도 스타트업들은 평균 수개월 이상을 자금 없이 버텨야 한다.

시장 투자심리가 악화된 최근의 현실에서는 이같은 연체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지급 지연으로 스타트업이 지는 부담은 상당히 높다. R&D 비용의 경우 초기 스타트업의 인건비 및 주요 지출에 쓰인다. 대금을 치르지 못해 기술 개발이 멈추거나, 주요 연구역들의 월급이 체불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평가다.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음에도 보릿고개에 걸려 넘어지는 셈이다. 지원 대상이 대부분 기술을 개발 중인 초기 기업인 점을 감안하면 금융권 대출을 이용하는 등의 대안이 없음은 물론이다. 기업 신용도, 자산도 담보가 될 만한 것이 없는 상태여서다.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스타트업 대표가 지급 지연 기간을 버티기 위해 사비를 지출해 사업 대금 및 직원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한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는 “지원금 지급 연체가 빈번한 시기에 쓸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주는 것도 방법이다. 정부 심의로 증권사나 VC가 정부 보증하에 개입해서 브릿지론을 제공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며 “어차피 명확하게 지원확약이 있는 정부지원금이라면 금융기관이 보조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사다리를 놓는 유연한 사고도 필요해 보인다.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나”라고 조언했다.

최악으로 치닫는 민간 투자시장 심리 속에 정부의 추가 지원을 기대해보지만, 이 경우는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평가다. 팁스 수혜 이후에 심사를 통해 추가 예산을 지원해주는 ‘포스트 팁스(POST TIPS)’ 라는 과정이 있지만 수혜 사례가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지원을 연계 받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시하는 사업화 성공 요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창업 2년 내 기업이 달성하기에 문턱이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다. △10억 이상 인수합병(M&A)에 성공 △기업공개(IPO) △국내 VC업계 평균 투자금 이상의 투자유치 달성 △신규 고용 20명 이상 △연간 매출액 10억원 또는 수출액 50만불 이상 등의 요건 중 일정 비율 이상을 충족해야 수혜 대상이 될 수있다.

흔들리는 SVB 모델 도입 논의

연구개발(R&D)에 성공한 초기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자금창구도 마땅치 않다. 미국 벤처금융 전문 은행인 SVB 모델을 국내에 자리잡게 해야 한다는 논의가 해마다 반복됐어도 뚜렷한 결과물은 없는 상태다. 최근 SVB 파산 사태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진행 중이던 한국형 SVB 도입 논의안들 마저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금융당국이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등의 자금 조달을 전담하는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을 추진 중이었으나 속도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이밖에 대전시 등에서 SVB 벤치마킹을 추진하던 사례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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