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한파 지난 PEF 업계…눈치 안보는 LP들과 접점 늘리는 운용사들
입력 2023.03.15 07:00
    비교적 젊어진 LP 심사역들 달라진 풍속도
    평일 골프도 OK, 운용사 이직도 OK
    펀드레이징 경쟁 격화할 2023년
    이미 LP 사로잡기 나선 운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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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혹한기라고 표현해도 무방할만큼 지난해 펀드레이징 시장은 얼어붙었다. 출자기관(LP)들은 금고를 걸어 잠궜고 운용사(GP)들도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로 블라인드펀드를 가진 몇 곳만 투자에 나서곤 했다. 

      올해부턴 상황이 조금씩 반전하기 시작했다. 이미 상수가 된 고금리 상황에서 수익률 재고에 힘써야하는 LP들은 그나마 높은 수익률을 기대해볼 수 있는 대체투자 출자 사업 채비에 나서고 있다. 블라인드펀드 출자 계획을 세우는 것은 물론 프로젝트 거래도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LP들의 움직임에 가장 분주해 진 곳은 역시 운용업계다. 운용사들은 이미 LP 심사역들과 연말부터 미팅을 갖고 점접을 늘려가며 올해부터 격화할 펀드레이징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밑작업에 돌입했다.

      지난 수 년간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핵심 실무진은 빠른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 이미 30대 중후반 나이대의 실무진이 출자 기관의 핵심 인력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이같은 이유에서인지 과거와 달리 고고하던(?) LP들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져간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LP들 사이에선 사실상 금기시 했던 평일 골프 라운딩도 심사역들을 중심으로 이제는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행여 뒷말이 나올까 몸을 사리던 LP들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까지 들린다. 흔히 갑(甲)의 위치로 평가 받지만 월급쟁이에서 벗어나고자 운용사로 자리를 옮기는 LP 실무진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회자되지 않는다.

      사실 평일 골프 라운딩은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선 업무의 연장선으로 인정 받아왔다. 앵커 투자자가 거래를 확정하면, 신뢰(?)를 바탕으로 후속 투자에 운용사들 또는 출자자들이 따라 나서는 관행이 보편화한 탓에 ‘인적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활동 전반이 업무로 여겨졌다.

      이는 상대적으로 출자 규모가 크고, 개별적으로 팍팍한 투심위를 거쳐야하는 사모펀드(PEF) 업계의 문화와는 사뭇 달랐지만 최근엔 이와 같은 경계도 사라지고 있는 모양새이다. VC와 PEF 운용사들 영역의 투자 경계가 사라지는 것과는 별개로, 다소 느슨해진(?) 또는 '눈치를 보지 않는' LP들의 분위기 변화가 주효하다는 평가도 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PEF 업계의 큰손으로 자리잡은 MG새마을금고와 여기서 출자받은 GP의 부적절한(?) 잦은 만남이 투자 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이마저도 개의치 않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 대표급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 한 두 곳을 제외한 공제회, 연기금 및 민간금융기관 등 실무진들이 활동의 제약을 크게 받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인해 PEF 운용사들의 투자 반경은 상당히 넓어졌다. 경영권을 수반한 거래(바이아웃)뿐만 아니라, 일반 헤지펀드의 투자 전략 그리고 제도권 금융기관이 취급하는 업무 상당 부분을 취급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스페셜시츄에이션, 크레딧펀드 등 다소 특수한 상황에 투자하는 펀드들이 생겨나고 이에 대한 인력 수요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굳이 전관(?)과 같은 거창한 이유를 차치하고 다양한 투자건을 검토하고 심사·의결한 경험이 있는, 실무적 감각을 갖춘 LP 출신 인력들의 수요가 늘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부터는 주요 출자기관 핵심 인력들의 운용사행 이직이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일반 운용사뿐만 아니라 대기업 계열의 기업형벤처캐피탈(CVC)로 향하는 인력들도 상당수다.

      이는 어수선한 LP들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연금고갈, 수익률 저조 등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 국민연금만 보더라도 정부의 정책 방향성에 흔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근무지와 연봉을 비롯한 처우에서도 눈에 띄게 내세울 게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한 때는 정부의 자본시장 활용 정책의 최일선에 섰던 한국성장금융도 이제는 지속가능성을 염려해야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의 수익률이 고공행진하는 사례들이 등장할수록 LP 심사역들의 속이 더 쓰린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수익률에 목을 매고, 각종 금융규제에 눈치를 살필수밖에 없는 소위 갑(甲)이 아닌 LP인 보험, 캐피탈 등 민간 금융기관 심사역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주요 PEF 출자기관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비교적 젊은 심사역들의 처우 개선 문제는 오래전부터 화두였지만 실제로 실행하기까진 상당히 복잡한 절차와 의견조율이 필요하다"며 "전문성을 갖춘 실력있는 실무진들을 확보하려는 LP들의 노력이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GP들과의 격차를 줄이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파를 겪은 PEF 시장은 올해부턴 치열한 펀드레이징 경쟁이 예상된다. 이미 조(兆) 단위 펀드레이징에 나선 국내 운용사들도 상당수다. 1~2년간 투자 활동이 정체한 상황을 반전해야하는 운용사(GP)들도 상당히 많은 상황에서 출자 기관 심사역들을 사로잡기 위한 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GP와 LP들의 밀월의 부작용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여파는 고스란히 수익자의 몫이 될 수 있다. 사실 골프 라운딩의 문제가 아니다. LP가 출자자로서 격(格)을 내려놓는 순간부터 위기가 시작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