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으로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VC)에 대한 경계감이 극에 달하면서 국내 벤처 업계도 시장 동향에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특히 벤처 업계는 주요 출자자인 연기금과 공제회가 어떻게 대응할지 눈여겨보고 있다. 가뜩이나 작년부터 국내 벤처 시장이 위축됐는데 SVB 사태로 출자자들이 돈줄을 더 죌 수도 있기 때문이다.

14일 주요 공제회의 투자 관계자는 "SVB 사태를 당연히 경계하고 있다"며 "출자한 VC나 스타트업이 SVB와 자금적으로 연결되진 않았는지 살펴보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 출자한 VC 외에 앞으로 어떻게 투자할지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며 "스타트업 시장이 위축돼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데 SVB 사태까지 겹쳐서 출자액을 늘리거나 신생 VC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주요 공제회 투자 관계자도 "시장이 안 좋아도 공제회는 정기적으로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VC로 가는 자금줄이 아예 끊기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투자액이 줄거나 시기가 더 미뤄지는 등 변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SVB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스타트업 시장은 이미 경색된 상태였다. 지난해 글로벌 주식시장이 급락하는 과정에서 스타트업 시장도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간편결제 앱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의 경우 장외시장에서 2021년 11월 기록한 최고점 16만7천원 대비 올해 1월 3만1천500원까지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이는 컬리, 야놀자, 오아시스 등 이른바 '유니콘'이라고 평가받던 스타트업에 공통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연기금과 공제회도 이런 분위기 속에 작년부터 출자를 건너뛰거나 출자액을 줄이며 경계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노란우산은 지난해 진행한 벤처펀드 출자사업에서 총 790억원을 출자했다. 전년도의 1천200억원 대비 3분의 1이나 줄였다. 지난해 여타 공제회가 단기 자금난을 겪던 와중에도 노란우산은 상대적으로 자금 여유가 있었으나 투심 위축으로 벤처 출자 규모를 대폭 삭감한 것이다.

군인공제회도 지난해 VC 출자액을 800억원으로 줄이면서 시장에 대응했다. 마찬가지로 전년도의 1천억원 대비 200억원 줄어든 액수다. 행정공제회는 지난해 VC 출자를 건너뛰기도 했다.

VC 출자액 못지않게 시장에 악재는 신생 VC로 엔드 투자자의 자금 공급이 끊기도 있다는 점이다.

군인공제회는 당초 지난해 VC 출자 사업을 진행하며 루키리그도 운영할 계획이었다. 2개사에 총 80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군인공제회는 루키리그에서 위탁운용사를 선정하지 않고 계획을 철회했다. 벤처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검증된 기관 위주로 우선 자금을 배분하기로 전략을 돌렸기 때문이다.

주요 공제회 관계자는 "군인공제회는 마땅한 루키급 운용사가 없어 출자 계획 자체를 물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무래도 시장 상황이 어려우니 안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루키리그는 벤처 출자 사업에서 신생 운용사끼리만 경쟁하는 리그를 뜻한다. 대체로 업력이 3~5년 사이, 운용자산은 1천억원 규모의 운용사를 가리킨다. 대형 VC와 경쟁은 어렵지만 실력은 탄탄한 유망주를 발굴하겠다는 취지인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먼저 타격을 입게 됐다.

이같은 여건에 SVB 사태까지 덮치면서 VC와 스타트업 시장은 자금 사정이 악화하진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로 전해졌다.

유니콘으로 분류되는 스타트업 관계자는 "우리처럼 그나마 투자금을 미리 비축해둔 스타트업은 허리띠 조르고 버티지만, 자금 부족으로 정리해고를 하거나 사업을 접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며 "SVB 사태까지 터지면서 VC를 불안하게 보는 시선이 더 많아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은행 본사에 있는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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