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이 벤처투자 한파 녹일 대안될까

글로벌 벤처투자 급감에도 중동 국부펀드는 투자 활발

2023-01-18 11:21:08 게재

지난해 4개 국부펀드 벤처투자 785억달러 규모

한국 바이오·헬스케어 선호 분위기는 강점 작용

"투자성향 잘 살피고, 문화·종교 차이 고려해야"

국내 벤처투자시장이 꽁꽁 얼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 3고(고금리 고환율 고물가)로 국내외 벤처투자가 크게 위축됐다.

윤석열정부가 벤처투자 마중물 역할을 하던 모태펀드를 줄여 벤처투자심리를 더욱 악화시켰다. 특히 국내외 경제불확실성은 글로벌 벤처투자시장 회복을 막고 있다.


18일 기술기업·스타트업 전문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츠(CB Insights)에 따르면 글로벌 벤처투자 규모는 2021년 4분기 1782억달러를 기록하며 정점에 도달한 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2022년 3분기 벤처투자는 745억달러로 전분기(1126억달러)보다 34% 감소했다. 전년 같은기간(1640억달러)과 비교하면 55% 하락했다. 1년만에 벤처투자액이 절반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글로벌 벤처투자 위축으로 국내 스타트업·벤처투자 규모 역시 줄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1년 3분기 2조913억원이던 벤처투자는 2022년 3분기 1조2525억원에 그쳤다. 1년만에 40.1%(8388억원)가 급감했다.

스타트업 투자도 마찬가지다. 2021년 하반기(7조2184억원)보다 2022년 하반기(3조7751억원) 투자규모가 절반 가까이(47.7%) 줄었다.

벤처투자 혹한기가 시작된 것이다. 정부는 벤처투자 활성화 방안으로 '중동 국부펀드'를 주목하고 있다. 중동 국부펀드를 유치해 국내 벤처투자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계획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3년 말까지 8조원 이상의 글로벌 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위해 그동안 미국과 아시아 중심으로 운영된 해외벤처네트워크를 중동 유럽 등으로 다변화하기로 했다.

특히 새로운 벤처투자 유치방안으로 중동을 주목하고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중동국가와 투자협력 방안을 다방면으로 모색 중이다. 중동의 국부펀드는 풍부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탈석유시대를 대비한 벤처투자가 활발해 한국 벤처·스타트업에 활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동지역 27개 국부펀드 보유 = 국부펀드란 국가가 국가의 자산을 운용하기 위해 설립된 투자 펀드다로 전세계에 174개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한국은행의 위탁자산을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가 이에 해당한다. 중동 국부펀드는 고유가에 따른 풍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글로벌 국부펀드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공격적인 벤처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미국의 국부펀드와 연기금 분석기관 글로벌 SWF(Global SWF)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국부펀드 174개의 전체 자산규모는 11조3580억달러다. 자산규모 순위 1위는 중국투자청(CIC)이 1조3510억달러로 전체의 11.9%를 차지하고 있다.

중동지역 27개 국부펀드 자산규모는 4조1400억달러로 글로벌 국부펀드 전체 자산의 36.5%를 차지한다.

글로벌 국부펀드 상위 10개중 중동 국부펀드는 아부다비투자청(ADIA), 쿠웨이트투자청(KIA), 사우디공동투자펀드(PIF), 카타르투자청(QIA) 등 4개다. 중동경제의 호황을 고려할 때 중동 국부펀드의 자산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투자심리 위축에도 중동 국부펀드가 글로벌 국부펀드 투자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2022년 글로벌 국부펀드 투자액은 1525억달러(427건)으로 전년 대비 38% 증가한 규모다. 이중 5개 중동 국부펀드 투자가 활발했다. 이들의 투자비중은 전체 글로벌 국부펀드 투자의 48.4%에 달했다.

UAE의 아부다비투자청(259억달러, 17.0%)과 무바달라투자회사(113억달러, 7.4%), 아부다비국영지주회사(87억달러, 5.7%)를 비롯해 사우디공동투자펀드(207억달러, 13.6%), 카타르투자청(71억달러, 4.7%) 등이다.

신성장 동력인 벤처캐피탈(VC) 투자 역시 중동 국부펀드가 압도적이다. 2022년 중동은 벤처 투자가 가장 많은 상위 10개 국부펀드 중 4개를 운영하고 있다.

PIF, 무바달라투자회사, QIA, 아부다비국영지주회사(ADQ) 등 4개 국부펀드의 지난해 벤처투자액은 총 785억달러다.

◆산업 다각화와 외교수단으로 활용 = 중동 국부펀드가 벤처투자시장에 봄바람을 불러 올 것인가.

중소벤처기업연구원(원장 오동윤)은 "중동은 국부펀드를 산업구조 다각화와 외교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중동 국부펀드 활용론을 내놓았다. 다만 "성공적인 국부펀드 투자유치를 위해서는 주요 중동 국부펀드의 투자성향과 국내 유망 스타트업 특성간의 적합도를 진단해 실현가능한 투자유치 방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중기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중동 국부펀드의 투자성향과 국내 벤처투자 유치 가능성 진단' 보고서에서 "중동 국부펀드는 시리즈(Series) C 이후의 후기단계 투자를 선호하며 △소비기반플랫폼 △바이오·헬스케어 △핀테크 산업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중기연은 "한국은 중동 국부펀드의 관심투자 분야인 소비기반플랫폼, 바이오·헬스케어에 강점이 있다"며 3가지 투자유치 방향을 제안했다.

첫째는 단기성과를 위한 K-바이오·헬스 분야 집중 공략이다. 바이오·헬스는 중동지역에서 한국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분야이자 유망한 바이오·헬스 국내 스타트업이 다수 포진돼 있어 투자유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소비기반플랫폼 육성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동 국부펀드는 거대 소비시장을 목표로 하는 소비기반플랫폼을 선호한다. 반면 한국 스타트업의 소비기반플랫폼 대부분은 시장이 작은 내수에 기반하고 있어 중동 국부펀드 관심을 끄는 데 한계가 있다.

중기연구원은 "소비시장이 큰 인도 동남아 중앙아시아 등을 목표로 한 소비기반플랫폼기업을 창업초기부터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중기연구원은 민관협력에 기초한 기업간 인적·문화적 교류 정례화를 제시했다. 중동 국부펀드의 한국 투자 제약 요인은 정보부족과 문화·종교 차이로 인한 심리적 거리감, 의사소통 불편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중기연구원은 "중동은 펀드별로 투자업종이나 투자단계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고 한국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정보가 부족해 각 펀드별 투자성향을 고려한 정보제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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