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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필동정담] 역발상 벤처투자

장박원 기자
입력 : 
2022-09-21 18:03:53
수정 : 
2022-09-22 0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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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술기업들이 투자 빙하기를 맞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모건스탠리 자료를 인용해 21일까지 238일 동안 5000만달러 이상 가치를 가진 테크기업의 기업공개(IPO)가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이는 2000년대 초 닷컴버블과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의 싸늘했던 때를 넘어서는 기록이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올해 들어 28% 가까이 급락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섣불리 IPO에 나섰다가 낭패를 볼 수 있어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벤처 투자 열기가 식고 있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 투자 유치 금액은 7월에는 8300억원, 8월에는 86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83%, 19% 감소했다. 올해 초만 해도 기술 벤처로 우수수 자금이 몰려들었지만 미국과 한국의 금리 인상 이후 기류가 바뀐 것이다. 벌써부터 '벤처 혹한기'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와는 상반된 흐름도 보인다.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설립이 러시를 이룬다. 올해 들어 CVC를 설립했거나 설립하겠다고 한 기업이 15곳에 이른다. 벤처기업 몸값이 낮아졌을 때 알짜에 투자해서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역발상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벤처업계에서는 CVC가 투자 가뭄을 해소하는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다만 CVC는 차입 규모와 외부 자금 제한 등 숱한 규제를 받고 있어 벤처업계에 얼마나 많은 투자액이 유입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사마천의 '사기' '화식열전'에는 역발상 투자의 귀재가 등장한다. '백규'라는 인물이다. 그는 모두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쓰레기 버리듯 처분했고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는 상품은 보석처럼 사들였다. 흉작으로 곡식이 부족할 때는 창고에 쌓아둔 곡식을 내다팔고 풍년이 들어 곡식이 남아도는 시기에는 돈을 풀어 싼값에 곡식을 매입했다. 이런 투자 방식은 자연스럽게 수급을 조절하며 시장을 안정시켰다. 벤처 투자 가뭄기에 설립되는 CVC도 비슷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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