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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도 꽁꽁 얼어붙은 바이오…IPO 닫히고 투자 ‘뚝’

  • 명순영 기자
  • 입력 : 2022.08.12 11:02:48
  • 최종수정 : 2022.08.22 08:57:12
“○○인베스트먼트입니다. 귀사의 기술성과 발전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지만 최근 바이오 투자 방향성을 고려해 투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시장이 불안해 당분간 집행이 어렵습니다. 보여주신 파이프라인 개발 비전과 데이터는 좋지만 대외 환경으로 투자가 어렵게 돼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경영진이 투자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새로운 텀시트(term sheet·계약 조건)가 나오면 다시 논의해보겠습니다.”

바이오 스타트업 A사의 CFO(최고 재무책임자)가 최근 받은 문자들이다. 이 기업은 올해 신규 투자를 받기 위해 VC(벤처투자) 기업을 대상으로 수십 차례 IR 활동에 나섰다. 하지만 어느 한 곳도 속 시원하게 투자하겠다고 답하지 않았다. 기술성은 인정하지만 바이오 투자 환경이 얼어붙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A사뿐 아니다. 바이오 스타트업 대부분 자금난을 겪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바이오텍이 몰려 있는 송파구의 한 회사는 운영 자금난으로 임원 급여 지급을 미뤘다. 또 다른 바이오텍은 대표가 직접 연구원에게 이직을 준비하라고 말했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들린다.

어느 산업이든 투자금은 ‘마중물’처럼 기업을 키운다. 특히 바이오에 돈이 절실한 이유가 있다. 바이오는 업종 특성상 당장 수익을 창출하기 힘들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R&D(연구개발) 자금을 대거 투여해도 결과를 내기가 만만치 않다. 바이오 R&D를 이끌어갈 인재를 채용하려 해도, 대대적으로 임상을 진행하려고 해도 상당한 돈이 필요하다. 때문에 최근 ‘돈 가뭄’은 바이오 기업에 절체절명의 위기로 받아들여진다. 심지어 이미 증시에 상장한 파멥신은 자금이 부족해 임상을 중단했다. 3년간 진행해온 재발성 교모세포종 신약 후보물질 임상을 지난 7월 멈췄다. 파멥신의 지난해 매출액은 1억원이 안 된다. 기나긴 적자 누적으로 결손금만 254억원에 달한다.

바이오 기업이 자금 조달 수단으로 주로 활용했던 CB(전환사채·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채) 시장도 차갑게 식었다. 바이오가 한창 잘나가던 2020~2021년만 해도 자본 시장에서 바이오 기업을 찾는 투자자가 넘쳤다. 이때 CB로 3조원 이상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바이오 기업 주가가 하락하며 잘나갈 때 발행한 CB가 독이 됐다. 현 주가가 전환가격을 한참 밑도는 바이오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주가가 전환가격 이상으로 오르기를 기다리기보다, 원금과 이자를 당장 돌려받으려고 한다. 더구나 2020~2021년 CB는 대부분 무이자거나 이자율이 1~2%를 넘지 않는다. 최근 고금리 환경을 감안하면 매력이 떨어진다. 지티지웰니스, EDGC, 카나리아바이오, 유틸렉스, 크리스탈지노믹스 등이 만기 전 CB 투자자에게 현금을 돌려줬다.

문제는 2023년 이후다. 2020~2021년 대규모 발행한 CB의 상환 기한이 본격적으로 돌아온다. 주가를 회복하지 못하면 대규모 현금 상환 폭탄을 떠안아야 한다. 바이오 기업 줄도산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CB 발행에 성공했다고 해도 조건이 달라졌다. 면역세포치료제 개발 기업 엔케이맥스는 올해 4월 36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다. 표면 이자율은 0%지만 만기 이자율은 7%다. 10개월 전 CB 발행 때만 해도 만기 이자율은 1%에 불과했다. 투자자가 보다 높은 ‘안전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바이오 스타트업 대부분 자금난을 겪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IPO도 원활하지 않으며 바이오 스타트업이 줄도산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연합뉴스)

바이오 스타트업 대부분 자금난을 겪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IPO도 원활하지 않으며 바이오 스타트업이 줄도산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연합뉴스)



▶잇단 사고에…거래소 ‘깐깐’

▷고위험 상품 투자도 도마 올라

기업 생애주기에서 단 한 번 거액의 자금을 모을 수 있는 IPO도 얼어붙기는 마찬가지다. 항바이러스 치료제 개발 기업인 이뮨메드는 지난 7월 27일 코스닥 시장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지난해 11월 상장예비심사(예심)를 청구한 지 7개월 만이다. 이뮨메드는 항바이러스 단백질을 활용해 B형 간염 치료제를 만들고 있다. 해당 후보물질로 코로나19 치료제까지 개발한다. 상장 추진 당시 기업가치는 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11월 시행된 ‘프리 IPO(상장 전 지분 투자)’ 단계에서는 이보다 낮아진 37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후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며 IPO는 무산됐다.

바이오 기업의 IPO 시도는 최근 거래소 심사 단계에서부터 번번이 막히는 분위기다. 1월 한국의약연구소, 2월 퓨쳐메디신에 이어 6월 넥스트바이오메디컬도 상장 철회를 선택했다. 디앤디파마텍은 7월 심사 미승인 결과를 받았다. 디앤디파마텍은 4월 미승인 통보를 받은 이후에도 상장 철회를 선택하지 않고 시장위원회 심사를 받았지만, 결국 미승인으로 결론났다. 보로노이와 에이프릴바이오는 처음 제시했던 공모가 희망 범위의 최하단 또는 그보다 낮은 가격으로 몸을 낮춘 후에야 재수 끝에 코스닥에 겨우 입성했다.

올 들어 바이오 기업 IPO가 힘들어진 이유로 거래소 심사 강화가 꼽힌다. 새로운 기술특례상장 잣대를 마련 중인 거래소는 신약 후보물질의 임상 2상 결과 또는 기술 이전 성과, 사업성 등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년간 많은 바이오 IPO 기업이 특례상장제도를 활용해 증시에 입성했지만 실제로 시장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낸 곳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일부에서는 거래소가 갑자기 심사 잣대를 강화했다며 볼멘소리를 낸다. 투자 업계에서는 거래소가 상장예비심사 과정에서 지나치게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한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바이오 기업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린다. 증시에 입성한 바이오 기업이 똑 부러지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한국거래소가 2005년 기술특례상장제도를 도입한 뒤 이를 통해 약 100개 바이오 업체가 코스닥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지난 17년간 세계에서 인정받는 신약 개발에 성공한 기업은 없다. IPO 당시 약속한 사업 계획을 지킨 기업도 드물다. 헬릭스미스, 신라젠, 코오롱티슈진 등 과거 기업가치가 수조원에 달했던 기업이 줄줄이 임상에 실패했다. 이후 주가 폭락 혹은 주식거래 정지로 이어졌다. 개인 투자자는 엄청난 손실과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다. 실패한 임상을 포장하기 위해, ‘다른 부문에서의 성공’이라고 우기다 투자자 신뢰를 잃는 기업도 부지기수다.

주가도 크게 무너졌다. 일례로 신약 개발·진단키트 사업을 내세운 압타머사이언스는 IPO 2년 만에 주가가 반 토막 났다. 현 시가총액은 900억원 수준으로 IPO 당시 제시한 2200억원의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회사 역량 대비 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됐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피’ 같은 투자금을 방만하게 운영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헬릭스미스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유상증자 자금 등 2643억원을 고위험 사모펀드에 투자한 사실이 알려져 투자자 원성을 샀다. 헬릭스미스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네 번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5800억원의 자금을 모았다. 그러나 아직 신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헬릭스미스 바이오 신약 파이프라인 중 가장 단계가 빠른 당뇨병성신경병증 치료제 엔젠시스(VM202)는 당초 2020년 상용화가 예상됐으나 여전히 임상 3상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파멥신 역시 무역금융펀드에 175억원을 투자하는 등 본업을 외면한 고위험 투자로 도마에 올랐다.



. ▶그래도 IPO 문 두드리는 바이오

▷지아이·바이오노트 등 대기 중

투자 환경이 좋지 않아도 바이오텍은 꾸준히 IPO 문을 두드리는 중이다. 유니콘 특례상장을 추진하는 지아이이노베이션은 4월 코스닥 시장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다. 앞서 진행한 시리즈A~C로 900억원, 프리 IPO를 통해 1603억원 등 25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2019년 중국 심시어에 이중융합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GI-101’을 9000억원 규모에 기술 이전한 바 있다.

체외진단 기업 바이오노트는 6월 유가증권 시장 상장을 위한 예심을 청구했다. 바이오노트는 동물·인체용 진단시약 전문 기업으로 코로나19 진단키트 생산 기업 에스디바이오센서가 2대 주주다. 두 회사 모두 시장에서 조 단위 기업가치로 평가됐던 대어급이다.

면역 신약을 연구하는 샤페론, 대웅제약 창업주의 차남 윤재훈 대표가 설립한 연질캡슐 제조사 알피바이오, 혈관질환 치료제 개발 선바이오 등은 상반기에 상장예심을 통과했다. 하지만 2개월 넘게 시장 상황을 살피며 증권신고서 제출 시기를 저울질하는 중이다.

업계는 ‘코스닥 상장 재수생’인 백신 개발 기업 큐라티스에 주목한다. 큐라티스는 지난 2020년 6월 기술특례상장을 시도했지만 예비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상장을 자진 철회했다가 2년여 만에 재도전에 나섰다. 지난 3월 기술성 평가를 통과한 후 약 5개월 만인 지난 8월 8일 코스닥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큐라티스는 지난해 427억원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 한국 생명과학기업,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이 공동출자한 라이트펀드 연구비 지원 사업과제에 선정되는 등 감염병 백신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전문가 “IPO 外 M&A 노려야”

▷윤석열정부는 여전히 ‘바이오’

바이오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바이오 기업이 IPO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M&A(인수합병)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은 최근 글로벌 바이오행사 바이오플러스-인터펙스 코리아 2022 세션에서 “IPO 버블 논란을 넘어 M&A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국내 창업 기업이 12만5000개인데, 이 중 스타트업이 2만개였다. 이 가운데 1500개가 투자 유치를 받고, 평균 50개가 상장됐다. IPO가 이처럼 좁은 문인 만큼 2만곳 중 50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 원장은 “글로벌 유니콘 기업 2500개 중 바이오 기업은 28개밖에 되지 않는다”며 “바이오 기업가치를 높게 만들어 상장시키고 투자금을 회수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용범 삼일회계법인 회계감사부문 파트너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도 바이오텍 IPO가 급감했지만 M&A는 여전히 활발하다”며 “많은 국내 바이오벤처가 IPO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현재 시장에서는 M&A를 고려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바이오 ‘혹한기’를 옥석 가리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경쟁력을 갖춘 바이오에만 스마트머니가 집중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실제 차별화한 기술력으로 호평 받는 바이오텍이 적지 않다.

인공지능(AI)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스탠다임과 쓰리빌리언이 그 사례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 회사 트랙슨(Tracxn)은 ‘올해 전 세계 생명과학 기술 산업을 선도하는 가장 유망한 스타트업’을 선정했다. 그 결과,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유망주에 국내 스탠다임을 꼽았다. 스탠다임은 AI를 토대로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창업 초기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췄던 것과 달리, 최근 최적의 AI 플랫폼과 이에 부합하는 성분 디자인 플랫폼을 별도로 제공한다. 쓰리빌리언은 성장성이 높은 초기 단체 벤처(시리즈A 투자 이상) 중 한 곳으로 2년 연속 선정됐다. 쓰리빌리언은 국내 유전체 분석 바이오 1세대 기업 마크로젠에 몸담았던 금창원 대표가 2016년 설립한 ‘유전체 분석 기반 희귀 유전질환 진단검사 서비스’ 기업이다. 지난해 말 기술성 평가를 통과하고 지난 4월 거래소에 예심을 청구했다.

다행이라면 윤석열정부에서 바이오를 키우겠다는 의지는 강하다. 정부가 백신 주권 확보와 신약 개발을 위해 올해 5000억원 규모의 ‘K-바이오·백신펀드’를 조성한다. 정부 등 공공부문이 2000억원, 민간 투자자가 3000억원의 자금을 투자하고 향후 1조원 규모로 확대한다. 2026년까지 13조원 규모의 민간 투자도 이끌어내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2호 (2022.08.17~2022.08.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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