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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투사·PE “신기사만 규제 적어” 부글부글

신규 벤처투자 ‘신기사’ 쏠림 현상 뚜렷

  • 박수호 기자
  • 입력 : 2022.08.12 11:36:05
  • 최종수정 : 2022.08.18 15:12:47
#1 패션회사 LF그룹은 최근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신기술사업금융업에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100% 자회사 LF인베스트먼트를 통해서다. LF는 자본금 110억원을 출자해 100% 자회사 ‘LF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고 소개했다. 더불어 금융감독당국에 신기술사업금융전문회사(이하 신기사)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기사란 여신금융전문업법상 벤처투자를 할 수 있는 회사로 스타트업, 벤처기업에 투자, 융자 등을 해주는 금융사를 지칭한다.

#2 대전시는 최근 전국 최초로 신기술 금융지주회사인 ‘대전투자청(가칭)’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대덕연구개발특구의 벤처기업,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지자체가 직접 나서 벤처 지원을 하겠다는 취지다. 대전시 관계자는 “펀드와 저금리 여신을 담당하는 공공형 복합 금융기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눈여겨볼 지점은 회사 형태다. 대전투자청은 ‘신기사’로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흔히 벤처투자 하면 창투사, 즉 창업투자회사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대부분 벤처캐피털(VC) 회사들이 창투사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는 좀 다르다. 종전 VC나 캐피털 회사도 신기사 라이선스를 추가로 등록하려 한다. 더불어 근래 사모펀드 금융사고가 빈발하면서 사모펀드에 투자하던 ‘큰손’들이 대거 신기사로 몰린다는 현장 목소리도 자주 들린다.

지난해 일반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설립 관련 법이 통과되면서 CVC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 ‘신기사’로 등록하고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매경DB)

지난해 일반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설립 관련 법이 통과되면서 CVC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 ‘신기사’로 등록하고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매경DB)



▶창투사, 신기사 어떤 차이?

▷자본금 요건·주무부처 달라

표면적으로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창투사와 신기사는 성격이 비슷하다. 다만 소관 부처에서 일단 차이가 있다. 창투사 주무부처는 중기벤처부다. 반면 신기사는 금융위원회 소관이다. 자본금 요건도 다르다. 창투사는 20억원 이상이면 되고 신기사는 100억원 자본금을 모아 와야 설립이 가능하다. 어찌 보면 창투사가 만들기 더 쉬우니 더 많은 기업이 선호할 법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에만 14개 신규 신기사가 생겼다. 올해도 이런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CVC 분야에서도 신기사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

참고로 지난해 일반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 관련 제도가 개선됐다. 대기업도 자회사로 VC를 둘 수 있게 됐다. 법 개정에 따라 많은 대기업이 CVC를 설립하고 있는데 대부분 신기사 라이선스로 출범시킨다. 최근 CVC를 추진하고 있는 GS, 효성 등도 이런 수순을 밟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당국에 넘어온 8월 기준 신기사 등록 대기 건수가 40여건이 넘는다.

정보력 많은 대기업마저 벤처투자 기업 성격을 창투사가 아닌 신기사로 규정하는 이유는 뭘까. 한 대기업 CVC 관계자는 “규제 때문”이라고 답했다. “창투사는 벤처인증기업에 일정 비율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규제가 있다면, 신기사는 아주 초창기 창업기업까지도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롭다는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사모펀드보다 신기사 선호하기도

▷신기사 투자조합 출자 금액 제한 없어

여러 사람에게서 돈을 거둬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이른바 투자조합 운영 측면에서도 신기사가 낫다는 시선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은행 PB센터 등에서는 개인 투자자 대상 간접투자 상품인 사모펀드를 조성,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런데 여러 사모펀드가 부실, 불완전판매 등으로 대규모 환매 사태가 빚어지자 금융감독당국이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일단 사모펀드 최소 가입 금액이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더불어 사모펀드 조성 시 수탁사를 둬야 하는데 수탁사 책임 범위 등 규제가 강화됐다. 그러자 은행 등 수탁 업무를 담당했던 금융사에서 종전 투자 이력이 없는 신규 사모펀드 사업자의 수탁 업무를 기피하려는 경향도 생겼다. 이래저래 개인 투자자의 벤처투자가 사모펀드를 통하는 방법으로는 어렵게 된 셈이다.

반면 신기사는 투자조합을 결성할 수 있다. 판매사, 수탁사를 확보할 의무도 없다. 출자 금액도 제한이 없어 개인이 신기사를 통해서는 1억원 이하로도 조합원이 될 수 있다. 한 독립계 신기사 대표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강남 큰손들이 신기사 조합으로 스타트업에 투자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신기술조합 개인 투자자는 2018년 말 366명, 2019년 말 792명이었지만 2020년 말 2039명으로 계속 늘어났다. 지난해 3월 기준으로는 2521명에 달한다. 증권사를 통해 모집된 신기술조합 출자자 중 개인 투자자 비중은 지난해 3월 기준 75.8%에 달했다.

금감원 측은 라임, 옵티머스 사모펀드 사태 이후 개인 투자자가 풍선 효과 때문에 신기사 조합으로 대거 이동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신기사만 예뻐한다?

▷창투사·PE “역차별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창투사나 사모펀드 측에서는 ‘역차별받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한 신규 사모펀드 대표는 “간접투자 상품 요건이 강화돼 새롭게 사업을 시작해보려 하는 금융사는 문턱이 그만큼 높아진 반면, 신기사는 거의 규제를 받지 않으니 불공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창투사를 담당하는 중기벤처부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신기사만큼 규제를 완화해주는 것이 맞는지 원래 설립 취지대로 벤처기업에 투자하게 하는 것이 맞는지를 두고 여러 의견을 청취 중이라는 것이 현장 분위기다.

더불어 신기사 조합이 금융 소비자 보호에 취약하다는 시각도 비등하다. 금융감독당국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금감원은 이런 이유로 신규 신기사는 개인 투자자가 아닌 기관 투자자 위주로 투자자를 모집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참에 신기사 문제를 아예 개선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벤처투자 성격이 비슷하다면 이를 총괄하는 부처 협의체를 만들고 동일 규제로 바꿔나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이 비등하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자유시장연구원장)은 “주무부서가 다르면 금융 소비자 보호 등에서도 대처가 다를 수 있다. 윤석열정부 들어 규제 개혁을 외치고 있는데 벤처투자 분야에서도 컨트롤타워가 마련돼 특정 업태가 성업하고 다른 업태가 위축되는 일은 방지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박수호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2호 (2022.08.17~2022.08.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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