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욱 KAIST 경영대학 교수
백용욱 KAIST 경영대학 교수

[공감신문] 백용욱 칼럼니스트= 스타트업의 성장과 확장성을 가져오는 스케일업(scale-up)에 대한 정책이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지난 십여 년간 정책 지원을 아낌없이 한 결과, 우리나라는 ‘제2의 벤처 붐’을 맞이했다. 하지만 국내 벤처투자는 스타트업 초기투자에 집중돼 있고 양적 팽창 위주로 활성화됐다는 지적이 많다. 

가령 우리나라 벤처캐피탈 신규 투자금액 규모는 지난해 처음으로 7조원을 넘어섰다. 피투자기업수도 2,400개를 넘겼다. 그럼에도 비상장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유니콘 기업의 개수로 본 우리나라의 세계 순위는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불과 3년 전만해도 세계 6위였던 한국은 2022년 현재 미국, 중국, 인도, 영국, 독일 등은 물론 이제는 프랑스, 이스라엘, 캐나다, 브라질, 싱가포르보다도 후순위에 있다.

스타트업의 스케일업이 국가 경제의 지속적인 혁신성장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스타트업의 양적 생성뿐 아니라 스타트업의 질적 성장을 위한 새로운 정책적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스케일업 기업의 고속성장을 위해 벤처캐피탈과 같은 지분 투자뿐 아니라 지분 희석이 없는 부채성 자금 공급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 대표적인 게 바로  ‘벤처대출’(venture debt)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스타트업의 스케일업을 위해 벤처대출이라고 불리는 자금조달 방식이 많이 활용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다.

벤처대출은 벤처캐피탈 등 기관 투자자로부터 투자 받은 스타트업에게 제공하는 대출을 의미한다. 즉, 벤처캐피탈에 의한 자금 공급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담보와 영업이익 등이 거의 없는 적자기업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전통 금융시장에서 대출을 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비상장 스타트업은 거의 전적으로 벤처캐피탈의 지분 투자에 의한 자금 조달 방식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반면 벤처대출은 이미 벤처캐피탈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에게 제공하는 대출로, 벤처캐피탈의 후속 투자나 이후 투자 단계에서의 벤처캐피탈 자금 상환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벤처캐피탈의 후속 투자 가능성 여부를 심사해 대출을 하게 되고 후속 투자가 실질적인 신용공여의 근거가 된다.

벤처대출은 은행에서 제공하는 경우와 비은행인 벤처대출펀드(venture debt fund)에서 제공하는 두 가지 형태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벤처대출 시장이 활발한 미국에서는 지난 40여 년간 스타트업 생태계 전문은행인 ‘실리콘밸리뱅크’(Silicon Valley Bank, 이하 SVB)를 중심으로 은행형 벤처대출 상품이 자금공급 수단으로 활성화됐고, 수많은 유니콘 탄생에 한몫을 했다. 또 비은행형인 ‘WTI’(Western Technology Investment) 혹은 ‘허큘러스 캐피탈’(Hercules Capital)과 같은 펀드형 벤처대출도 활발하게 조성돼 스타트업의 스케일업에 큰 기여를 했다.

벤처대출 활성화는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 나아가 국가경제의 지속적인 성장 및 일자리 창출 모두에 이익이 된다.  /사진 픽사베이
벤처대출 활성화는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 나아가 국가경제의 지속적인 성장 및 일자리 창출 모두에 이익이 된다.  /사진 픽사베이

 

융자형 벤처대출 시장이 활성화되면 지분형 벤처캐피탈 시장과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며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스타트업 측면에서는 스케일업 단계에서 지속 증가하는 소요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연속적으로 지분 투자를 유치하는 데 따른 시간 부담과 지분 희석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 벤처캐피탈 입장에서는 후속 투자 시 많은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제거된 상태에서 심사하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특히 금리가 오르는 시대에는 벤처캐피탈 유치가 어려워지고 투자유치 기간이 길어질 수 있는데, 벤처대출은 보유 현금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 이른바 ‘캐시 런웨이’(Cash Runway)를 연장해주는 역할을 해 양질의 스타트업이 자금시장의 어려움 때문에 실패하는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이렇듯 벤처대출 시장의 활성화는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 나아가 국가경제의 지속적인 성장 및 일자리 창출 모두에 이익이 되는 것이다. 

다만, 국내에서 지분형 벤처캐피탈 시장을 보완하고 스타트업의 스케일업을 견인할 벤처대출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제도적 개선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첫째, 벤처대출과 연계된 워런트(Warrant)를 명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벤처대출은 담보 없이 벤처캐피탈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에게 대출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 높은 리스크를 일부 상쇄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에서는 벤처대출 제공자가 통상 신주인수권에 해당하는 워런트를 취득하도록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신주인수권부사채에 대한 특별 규정을 두고는 있으나 ‘벤처대출과 연계된 워런트’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없어 입법불비로 남아 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스케일업을 위한 벤처대출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스타트업의 질적 성장이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다.

둘째, 벤처대출 상품을 취급하는 은행보다는 전문 벤처대출펀드 및 전문 기업성장투자기구(BDC: Business Development Company)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많아져야 한다. 최근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에서 벤처대출 상품을 시범적으로 제공하기는 했지만, 스타트업 생태계 전문은행으로 시작한 SVB와는 그 DNA가 태생부터 다르기 때문에 벤처대출이 확장되기에는 제한적이라고 본다. 따라서 기존 벤처캐피탈 운용사와의 네트워킹을 업으로 삼는 민간영역에서의 전문 벤처대출펀드(venture debt fund) 운용사가 더 활성화되도록 모태펀드나 성장금융 등에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벤처대출 시장 활성화를 통해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가 한 단계 더 도약하고 질적 성장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백용욱 KAIST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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