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벤처 투자 열풍도 꺾이나…토스·쏘카·컬리 등 줄줄이 IPO 연기 검토
  • 염현아 시사저널e. 기자 (yeom@sisajournal-e.com)
  • 승인 2022.08.07 14:00
  • 호수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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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자금 조달 위해 정부의 자금 지원 절실

줄곧 상승세를 이어오던 국내 벤처투자가 최근 감소세로 전환됐다. 금리 인상, 국제유가 급등, 인플레이션 등 세계경제 침체로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이 위축되면서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벤처 혹한기’가 본격화되면서 스타트업의 자금 확보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모태펀드 축소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업계의 우려는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2년 상반기 벤처투자 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투자는 역대 상반기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분기별 투자액은 전년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2분기 투자액은 1조825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94억원(4.2%) 감소했다. 분기별 투자액 감소는 코로나19 대유행의 직격탄을 맞았던 2020년 2분기 이후 8분기(2년) 만의 일이다. 미국의 벤처투자 시장은 더 심각하다. 데이터 분석기업 피치북에 따르면 올 2분기 미국 스타트업 투자액은 623억 달러(약 81조45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3% 줄어들었다. 이는 2019년 이후 가장 큰 감소율이다.

2021년 11월17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스타트업 축제 ‘컴업 2021’ 개막식에서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벤처 혹한기’ 본격화 우려

업계에선 그간 국내 시장에 불었던 스타트업 투자 열풍은 가라앉고, 이제 본격적인 한파가 몰아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특히 자금 규모가 큰 후기 단계 투자가 크게 위축될 것이란 분석이다.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혁신정책본부장은 “대외적인 상황 때문에 시장 자체가 좋지 않다. 국내 업체들도 그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초기 스타트업들에 들어가는 투자금 규모는 비교적 작아 큰 변화는 없을 테지만, 시리즈B 이상 후속 투자를 받는 기업들에는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토스와 쏘카, 컬리 등 연내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던 국내 대표 유니콘 기업들도 잇달아 일정 연기를 검토하고 있다.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고공행진하던 기업가치도 위축되면서 최근 크게 떨어졌다. 올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도 직방, 토스 등 소수에 불과했다. 전 세계 정부가 출구전략을 추진하면서 시장에 자금이 넘쳐나던 코로나19 팬데믹 때와는 상황이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 ‘벤처 혹한기’가 계속될 경우 스타트업 성장에 꼭 필요한 ‘스케일업’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벤처캐피털(VC)업계는 성장 가능성보다 자금 회수에 초점을 맞춰 투자를 진행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스타트업 기업 가치가 과대평가되면서 VC의 자금 회수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시장이 어려워진 만큼 스타트업의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한 VC 심사역은 “최근 시장 침체로 VC 기업들도 현금 흐름이 어려워져, 이제 성장 가능성만 보고 투자할 순 없는 상황”이라며 “성장 가능성으로 대규모 투자를 받았던 플랫폼 기업들은 이제 스스로 수익성을 입증하고,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글로벌 VC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국내 업계보다 시장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는 만큼, 앞으로도 성장성과 매력도가 주요 투자 기준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한 글로벌 VC 관계자는 “국내 VC업계와는 달리, 글로벌 시장은 당장 힘들어도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저평가 우량주’ 스타트업들을 계속 발굴해 키우는 데 투자의 방점이 찍힐 것”이라며 “글로벌 VC는 자금이 풍부한 만큼, 시장의 변동성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아 국내 VC들이 고민하는 기업들에 대한 투자에도 도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6월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벤처·스타트업의 투자애로·규제개선 현장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모태펀드 확대해 스타트업 지원할 때”

벤처 혹한기가 본격화됐지만, 정부는 벤처투자의 마중물인 모태펀드를 오히려 감축하겠다는 기조다. 모태펀드 의존도를 낮추고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에서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최근 중기부 첫 대국민 업무보고회에서 “고물가·고금리·고환 등 ‘3고(高)’로 투자 위축이 우려되지만, 언제까지 투자시장을 정부 주도로 견인할 수는 없다”며 “지금이 민간 투자 생태계의 전환 적기”라고 강조했다. 앞서 조주현 중기부 차관도 모태펀드에 정부 투입 비중이 낮아질 수 있다며 감축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업계의 우려는 커지는 분위기다.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하는 상황에서 유동성의 근간인 모태펀드까지 축소되면, 스타트업들의 자금 조달이 더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한 스타트업 대표는 “쓰고 없어지는 여타 예산과 달리, 모태펀드는 기업을 육성해 다시 회수되고 재투자되는 자금”이라며 “모태펀드 감축은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스타트업들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태펀드 성과는 매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벤처투자에 따르면 268개 모태 출자펀드가 투자한 올 1분기에는 총 4526억원을 회수해, 투자원금 대비 2.3배의 회수 수익배수를 기록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그간 꾸준히 늘려온 모태펀드의 수익률도 나쁘지 않은 만큼, 현재 스타트업 생태계에 발맞춰 모태펀드 규모를 더 키워 야 한다”며 “일반인들도 스타트업 투자를 손쉽게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혁신정책본부장도 “모태펀드는 민간 자금과 함께 결성된 펀드”라며 “오히려 모태펀드 확대가 기업들의 스케일업으로 이어져 더 많은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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