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테헤란로

[테헤란로] 비 올때 우산 같이 쓰는 심경으로

강재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7.11 18:23

수정 2022.07.11 18:23

[테헤란로] 비 올때 우산 같이 쓰는 심경으로
오래전 국내 모 은행장과 기업가들의 간담회를 취재한 적 있다.

이 은행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은행은 기업하는 여러분과 같이 가겠습니다. 어려울 때 돈을 회수하지 않고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않겠습니다."

기업가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땐 어린 연차여서 '당연한 것에 왜 환호를 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야 은행장의 말이 깊이 와닿았다.

제2 벤처붐을 타고 급성장한 벤처캐피털(VC) 업계와 스타트업이 위축되고 있다. 일각에서 유동성 파티 속에 급팽창했던 투자에 대한 옥석 가리기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옥석 가리기는 좋은 표현일 뿐 '모험' '꿈'이 가득한 스타트업에 대한 돈줄을 끊는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신규 펀드 조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사기로에 놓인 VC들이 적지 않다. 오래전에 만든 펀드로 수년간 연명하는 VC가 한둘이 아니고 일부는 자본잠식 상태이거나 전문인력 부족, 1년간 미투자 등으로 경고를 받았다.

이들의 투자패턴은 다음과 같다. 통상 모태펀드 등 정책금융기관 출자사업들은 펀드 운용기간을 7~8년으로 설정하고 투자기간을 3~4년, 나머지는 회수기간으로 잡는다. 투자기간에는 관리보수를 받을 수 있지만 투자기간보다 긴 회수기간에는 관리보수 비용을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VC들은 회수기간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 등 고정비를 충당하기 어렵다. 관리보수를 받기 위해선 신규 펀드 결성이 필수적이지만 투자할 자금을 받을 수 없게 되니 이마저도 쉽지 않다. 돈줄이 막히면서 자본금마저 까먹을 수밖에 없다.

VC들의 어려움은 고스란히 스타트업 업계에 직격탄이다. 특히 투자금이 쏠렸던 바이오 업계는 요즘 후끈한 날씨와 반대로 찬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주요 VC의 바이오 분야 투자가 줄었다. 비상장 바이오 기업의 기업공개(IPO)도 위축되면서 바이오 기업들이 투자금 확보에 애를 먹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바이오 보릿고개' '바이오 투자 빙하기'라는 말도 나온다. 일부 바이오 기업은 자금공급이 원활하지 못하자 임상은 물론 투자계획을 전면 보류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을 정도다. 현재는 바이오 업종에 국한돼 보이지만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스타트업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대한민국 서울은 최근 조사에서 스타트업 하기 좋은 세계 10대 도시로 선정됐다. 이는 VC와 스타트업 업계의 노력도 중요했지만 어느 정도 꿈과 모험을 믿어줄 수 있는 자금조달 측면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돈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사장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우산을 거두기보다는 혁신기술력에 자금조달의 물꼬를 더 터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앞서 언급한 은행장의 말처럼 '우산을 뺏는 일'이 발생해선 안된다.

kjw@fnnews.com 강재웅 중기생경부 차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