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 혹한기에도 햇볕 받는 '기후테크'
입력 2022.06.20 07:00
    소재·금융·헬스케어 낙폭 와중, 에너지만 +1202%
    벤처 혹한기에 기후테크에만 유일하게 투자 집중
    국부펀드 등 해외 큰손 ESG 요구와 부합…평가 반영
    국내도 태동…수익성 확신 심어줄 유니콘 발굴 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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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가자)

      글로벌 벤처투자의 혹한기에 유일하게 햇볕 쬔 곳이 있다. 에너지 등 기후테크와 관련된 산업만이 유일하게 네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글로벌 대체투자시장 리서치 전문기관인 프레킨(Preqin)에 따르면 에너지를 제외한 모든 산업군에서 글로벌 벤처투자 금액이 전년 대비 큰폭으로 떨어졌다. 소재가 -78.3%로 가장 낙폭세가 컸고 그 뒤로 금융(-59.9%), 헬스케어(-54.8%), 경기소비재(-50.8%), 산업재(-48%), IT(-37.5%), 커뮤니케이션(-29.1%) 순이었다. 에너지 산업만이 유일하게 플러스(+)로, 전년보다 규모를 1201.9% 키웠다.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투자기관들이 벤처투자 규모를 줄이고 있는 가운데 기후테크 관련 산업만이 유일하게 그 규모를 키우는 상황이다. 

    • 기후테크는 기후변화를 완화시키거나 적응하는 기술과 관련이 있다. 크게 분류하면 에너지·농식품·순환경제 분야에서 탄소 배출 절감에 기여하거나 기후변화 적응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는 산업이 해당된다. 최근 세쿼이아캐피탈의 리드로 7000만달러(약 840억원) 규모 투자를 받아 유니콘 기업에 등극한 탄소 회계 소프트웨어 기업 워터쉐드(Watershed)가 대표적 사례다.

      벤처투자가 이 산업에만 집중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지난 2월 기후위기가 예상보다 더욱 심각하다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제6차 보고서(AR6)가 전세계에 충격을 준 이후부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이 보고서를 두고 "인류 고통의 세계지도(atlas)이자, 전세계 리더십의 실패를 비판하는 고발장"이라 촌평하기도 했다.

      이후 해외 큰손들이 운용사들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대해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국부펀드(SWF)가 특히 적극적이다. 글로벌 2위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은 포트폴리오 기업들에 기후변화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요청했다. 세계 최대 연금펀드 중 하나인 캐나다 연금계획 투자위원회(CPP)도 재생가능에너지 등 청정에너지 자산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글로벌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앞으로 기후에 투자할 것이며, 탄소 배출에 영향을 끼치는 투자는 대폭 줄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민간기업 움직임도 뚜렷하다. 인스타그램·트위터 등을 발굴해 낸 크리스 사카가 설린한 로어카본캐피탈은 탄소 중립을 연구하는 스타트업에만 투자하는 기후테크 전문 투자사다. 아마존은청정 에너지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20억달러 규모의 VC 기후서약펀드 출범을 발표했고, 마이크로소프트도 10억달러 규모의 기후혁신기금을 내놓았다. 

      국내는 아직 해외에 비해 기후테크 투자가 활발한 편은 아니다. 산업은행 등을 주축으로 기관들이 ESG 투자 감시를 위한 평가 모형 구축 본격화에 들어가면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 VC와 PEF(사모펀드) 운용사들은 임팩트 투자에 의지를 갖고 산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커머스와 제조업 중심이던 투자도 점차 친환경 기반 운송·모빌리티, 식품 연구·농사·토지 등 먹거리에 대한 청사진을 제공하는 애그테크(AgTech), 스마트팜, 에너지 등으로 옮겨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에너지는 개발뿐 아니라 AI 및 스마트 모니터링 등의 테크를 중심으로도 접근되고 있다. 

      전문 투자조합도 설립되고 있다. 작년 700억원대 글로벌 기후테크 벤처펀드가 결성된 데 이어 올해 4월 임팩트 투자사 소풍벤처스가 국내 초기 기후테크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100억원 규모로 투자조합을 설립했다.

      '기후테크가 돈이 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은 쉽사리 투자 성사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다. 국내 한 대형 VC의 PE본부에선 한 기후 예측 스타트업에 최대 400억원 규모로 투자를 협의했으나 최근 이를 최종 철회했다. 수익성에 대한 확신 부족이 발목을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기후테크 산업은 투자 성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부 정책이나 규제에 영향을 받기 쉬운 면이 있다.  

      국내에서 아직 이 업계에 굵직한 선도기업이 나오진 않은 만큼 선제 투자를 통한 유니콘 육성 의도는 공통적으로 있어 보인다. 

      대형 VC 선임심사역은 "기후테크는 수년 내로 크게 팽창할 시장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했다. 펀드레이징하는 입장에서 해외 펀드와 커뮤니케이션 해보면 대규모 자금 출자에 있어 ESG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를 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상 모든 산업이 탄소와 관련될 수 있는 만큼 이에 기여할 수 있는 테크 기업을 주로 물색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