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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2000년 닷컴버블 붕괴와 비슷"…벤처업계, 성장서 `생존` 급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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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성장성 중시했던 투자
이젠 `당장의 수익성`에 초점
"무조건 5년 버텨야" 위기감
불필요한 지출·고용 축소
옥석가릴 기회라는 평가도

블록체인 월투자액 97% 급감
M&A도 5분의 1수준으로 `뚝`
◆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 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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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스타트업 가치 평가에서 10년까지 내다보고 이익을 '상상'해서 기업 가치를 매겼는데 이 공식이 이제 통하지 않는다."(국내 VC 심사역) 지난달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VC) 중 하나인 세쿼이아캐피털이 포트폴리오사에 보낸 서신 내용이 전해지면서 한국 스타트업 업계가 술렁거렸다. 52쪽 분량의 서신의 요지는 '가혹한 미래'에 대비하라는 경고였다. 서신은 "현재 상황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나 2000년 닷컴버블 붕괴 당시와 비슷해지고 있다"면서 "공짜 자본이 있는 무조건적인 성장은 끝났고, 투자사는 빠른 성장성이 아닌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수익성 있는 회사를 찾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 침체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를 빨리 접고 필요 없는 지출과 고용을 신속하게 줄일 것을 주문했다.

실제로 국내 정보기술(IT) 업계 일각에서는 '제2의 닷컴버블'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블록체인, 메타버스 관련 스타트업들이 큰 주목을 받고 관련 투자가 급증했다. 하지만 거품은 가장 많이 오른 곳에서 최근 가장 급격하게 빠지고 있다. 블록체인 분야 국내 스타트업 투자(월간 기준)는 지난 1월 1600억원에서 5월 50억원까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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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줄이 마르면서 스타트업의 경영 키워드도 '성장'에서 '생존'으로 바뀌고 있다. 테크·플랫폼 기업은 거래액이 늘면 개발자나 서비스 인력도 늘려야 하는데, 이러한 인건비 증가도 최근엔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유니콘 스타트업들도 올해 사업 계획과 비용 전략을 수정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이용자 수는 확보했지만 적자를 내고 있는 플랫폼 스타트업들은 채용 축소와 마케팅비 삭감 등을 모색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투자자들도 '성장 가능성'보다는 '숫자(실적)'를 요구하고 나섰다.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 스타트업레시피를 운영하는 미디어레시피의 이석원 대표는 "해외는 스타트업 투자 추이가 확연하게 꺾였고, 국내도 서서히 수치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면서 "특히 500억~1000억원대 기업 가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줄고 있다"고 했다. 일부 벤처캐피털은 투자 기업에 구체적인 성과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벤처캐피털은 보통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을 통해 투자자금을 회수하는데 최근에는 여의치 않다. 실제로 매경·더브이씨 조사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 M&A 투자(월간 기준)는 올해 1월 5420억원 수준에서 5월에는 973억원으로 줄었다. 인기 스타트업에 투자자들이 '역피칭'을 하고 딜이 2~3일 만에 종료되는 사례도 최근엔 찾아보기 어렵다.

김재영 되는시간 대표는 "100억원대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은 부침이 크고, 특히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스타트업은 마케팅비를 많이 줄이는 식으로 전략을 보수적으로 바꾸고 있다"면서 "창업자들 사이에선 5년 정도 버텨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추가 투자가 시급한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거품이 낀 기업가치(밸류)에 대한 조정도 예상된다. IT 업계 관계자는 "이익을 못내도 기업 규모가 커진 스타트업은 추가 투자를 받아야 조직 운영이 가능한 상황"이라면서 "밸류에이션에 대한 인식이 최근 절반 정도 수준까지 떨어져 이를 감수하고 투자를 받으려고 해도 기존 주주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자 최근 국내 투자 업계에서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대출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사업부까지 신설됐다.

스타트업 붕괴가 본격화하면 빅테크 기업의 스타트업 M&A와 인재 '이삭 줍기'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최근엔 촉망받는 '유니콘' 스타트업조차 돈줄이 끊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빅테크 기업의 계열사 대표는 "거품과 거품 해소 이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특히 성장을 위한 전략적 M&A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옥석 가리기'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불확실성이 심할수록 경쟁이 줄어 새로운 사업 기회가 나타나고 위기를 버텨낸 '진짜 고수'가 나올 수 있다는 예상이다.

[진영태 기자 / 황순민 기자 / 김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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