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진머티리얼즈의 말레이시아 공장 조감도.(사진=일진머티리얼즈)
▲ 일진머티리얼즈의 말레이시아 공장 조감도.(사진=일진머티리얼즈)

일진그룹 창업주의 차남인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가 지분 53.3%의 매각을 추진하면서 투자자인 스틱인베스트먼트(이하 스틱) 거취에 관심이 모아진다. 스틱은 일진머티리얼즈의 해외 생산기지 투자에 1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자했다. 일진머티리얼즈가 전기차 산업의 '세계의 공장' 격인 미국과 유럽에 공장을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스틱의 재무적 지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대주주인 허 대표가 지분 매각을 추진하면서 스틱의 '엑싯(투자금 회수)' 플랜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다. 스틱은 해외 생산기지에 직접 투자한 후, 해외법인을 지배하는 중간지주사의 상장을 통해 엑싯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허 대표가 돌연 회사 매각을 추진하면서 스틱의 엑싯 전략도 영향을 받게 됐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스틱은 투자 과정에서 최대주주 변경에 따른 위험방지 조항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 대표가 경영권을 매각해도 스틱은 엑싯하거나 새 주주와 협력하는 것 외에 선택권이 없는 셈이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최근까지도 "증설을 통해 공급능력을 확보해 시장점유율 1위를 수성하겠다"고 포부를 나타냈다. 그럼에도 허 대표가 갑작스럽게 회사 매각을 추진하면서 스틱의 투자 목표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스틱은 지난해 유럽공장 등 해외 생산기지의 증설을 위해 1조원 이상을 투자했다.

스틱은 지난해 해외 자회사의 콘트럴타워격인 중간지주사 IMG테크놀로지(IMG)에 4000억원을 투자했다. IMG테크놀로지의 자회사인 아이엠이테크놀로지(IMET)에 6000억원의 투자금을 배정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스틱의 지원으로 마련한 투자금을 통해 말레이시아와 유럽, 미국 등 해외 생산기지에 14개 생산라인을 건설한다. 2025년까지 해외에 14만톤의 전지용 동박 생산능력을 갖춘다는 전략이다. 특히 유럽에는 6만톤의 생산능력을 갖출 계획이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현금이 넉넉하지 않은 턱에 해외 생산기지 증설에 어려움이 있었다. 전지 업체들과 소재 업체들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외부자금을 끌어와 투자를 하는 것과 달리 허 대표는 스틱의 투자금으로 해외공장을 지었다. 올해 1분기 기준 일진머티리얼즈의 연결 기준 부채비율은 21.6%로 재무상태가 매우 우량하다. 현금성자산은 약 1조1000억원에 달하는데, 스틱의 투자로 마련한 9905억원을 제외하면 실제 현금성자산은 약 1300억원에 불과하다. 

스틱은 해외 생산기지의 증설이 완료된 이후 IMG 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IMG를 설립한지 1년도 채 안 돼 허 대표가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면서, 스틱의 투자 전략은 어그러졌다는 관측이다. 

업계에 따르면 허 대표의 일진머티리얼즈 경영권 매각은 창업주이자 부친인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 허 대표가 독자적으로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을 매각 주관사로 선정했고, 사모펀드와 대기업에 투자안내문을 배포했다. 일진머티리얼즈에 조 단위의 자금을 투자한 스틱도 경영권 매각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틱은 2019년 일진머티리얼즈의 IMM에 3000억원을 투자했다. 이후 3000억원을 추가로 투자했고, IMM은 FI인 스틱의 지원으로 말레이시아 2,3 공장을 증설했다. 지난해 기준 말레이시아 법인의 캐파는 4만톤이다.

IMM은 올해 초 6000억원을 투자해 말레이시아 공장의 캐파를 9만톤까지 확대할 계획이었다. 일진머티리얼즈의 말레이시아 공장(9만톤 예정, 현재 4만톤)과 유럽공장(6만톤 예정)은 모두 스틱의 자금으로 지어진다.

일진머티리얼즈가 사업을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데는 스틱의 지원 때문에 가능했다. 스틱은 2020년 말레이시아 법인(IMM)의 상장을 추진했다. 스틱이 IMM의 상장을 요구하면서 진행했는데, 스틱은 전방산업인 전기차 배터리의 성장성을 고려해 상장을 연기했다.

당시 시장은 '전기차 붐'이 형성되면서 전기차 및 배터리·소재 기업의 기업가치가 급속도로 높아졌는데, 스틱은 엑싯 대신 추가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허 대표가 일진머티리얼즈의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면서 스틱은 난관에 봉착했다는 평이다.

업계는 일진머티리얼즈의 경영권이 매각될 경우 스틱도 엑싯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허 대표 체제에서 IMM의 상장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FI의 엑싯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새로운 주주가 IMG의 상장을 추진할지 또한 불확실하다.

일진머티리얼즈의 매각 가격은 3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중간지주사인 IMG를 매각할 경우 모기업인 일진머티리얼즈의 기업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로벌 투자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IMG가 기업가치를 가장 적절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시기를 예상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만약 일진머티리얼즈의 새로운 주인이 해외 시장의 투자 전략을 바꿀 경우 IMG의 기업가치 또한 달라질 수 있다.

'전기차 붐'을 맞아 전지업체들과 소재업체들의 기업가치가 커질 것이며, 관련 기업들의 성장 가능성이 확실시된다. 이 때문에 스틱이 무리해서 자금 회수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주인이 누가 될지에 따라 스틱의 입장은 '좌불안석'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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