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의 리츠화?...자산 기반 안전 투자 힘싣는 글로벌 큰손들
입력 2022.05.24 07:00
    투자시장 불확실성 커지며 자산 기반 안전투자 늘어
    한국 공들이는 글로벌 PEF, 인프라·크레딧 투자 집중
    국내 대형 PE 포트폴리오도 이미 글로벌 큰손과 유사
    리츠처럼 자산 담고 상장하는 방식 늘 것이란 예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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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투자시장 경색 분위기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큰손 사모펀드(PEF)들도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전에는 한국 시장에서 경영권 거래(바이아웃)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실물 자산이 있는 부동산·인프라 투자나 대주주가 안전성을 보장하는 소수지분 투자 사례가 많이 보인다. 안전성 있는 자산을 담아가며 덩치를 키우는 모습이 리츠(Reits·부동산 투자회사)와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투자시장은 우크라이나 사태, 유동성 긴축, 인플레이션 등 영향으로 주춤하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며 한국 시장에 돈을 풀기 유리해진 글로벌 큰손 PEF들도 시장 변동성 때문에 보수적인 판단을 하는 분위기다. 자연히 정통 바이아웃보다는 전략을 다변화 해 부동산이나 인프라, 소수지분 등 크레딧 성격 투자를 늘리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당장 M&A를 통해 대규모 이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니, 장기적으로 안정적 성과를 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KKR이 대표적이다. 정통 바이아웃 거래보다 인프라 성격 투자들이 눈에 띈다. 작년 SK E&S 상환전환우선주(RCPS)에 2조4000억원을 투자했는데, 인프라 펀드 자금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 인프라 투자였던 터라 투자금 상당 부분을 금융사에서 저리로 빌릴 수 있었다. 이 외에도 환경 기업 에코그린홀딩스에 투자했고, 이후 TSK코퍼레이션과 합병시켜 에코비트 지분을 갖게 됐다. 환경 기업도 안정적인 현금창출력을 내는 인프라 성격 투자처로 꼽힌다.

      KKR은 작년 첫 아시아 부동산 펀드를 결성했다. 올해 이지스자산운용과 부동산 투자 합작법인(JV)을 만들고 있고, 신한금융투자 여의도 사옥도 함께 인수할 예정이다. KKR의 위상이 한국 운용사와 손을 잡아야 할만큼 떨어졌다는 시선이 있지만, 현실적인 사업 제휴라는 평가도 있다.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 산업가스 설비는 산업은행 인프라 금융 부서와 손잡고 인수를 추진했다. KKR은 최근 경영권 거래나 소수지분 투자보다 인프라 성격 거래가 많아졌다. 한국 사무소도 PEF보다 인프라 투자 인력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칼라일그룹도 투자 전략을 다변화 하고 있다. 카페 프랜차이즈 투썸플레이스 경영권을 인수하긴 했지만, 현대글로비스 소수지분 투자와 같은 안정성이 있는 투자에 공을 더 들일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현대글로비스 투자는 크레딧펀드 자금을 활용하고 국내 투자자 자금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칼라일 투자사 관계자는 “이규성 칼라일그룹 대표가 이수용 아시아 크레딧 대표와 뜻이 잘 맞는다”며 “정통 바이아웃보다 크레딧 성격 거래를 늘리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한 것 같다”고 말했다.

      블랙스톤은 올해 한국 법인을 다시 출범시키며 하영구 전 은행연합회장을 회장으로 선임했다. 신설한 부동산 팀 대표로는 안젤로 고든(Angelo Gordon)을 거친 김태래 태표를 초빙했다. 회사는 그간 지오영,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 등 기업과 스타필드 하남, 아크플레이스 역삼 등 부동산 자산에 투자했다.

      블랙스톤은 글로벌 차원에서 대학교 기숙사 운영업체(American Campus Communities)를 130억달러(약 16조5000억원)에, 부동산투자 신탁사(Reit PS Business Parks)를 76억달러(약9조6000억원)에 인수하는 등 상장 리츠사 인수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인수 후 상장폐지를 거쳐 사업 변수를 줄이기도 한다. 자산을 더해 안정적 수익을 거두면서, 시기를 살펴 다시 증시에 입성할 수도 있다.

      최근 증시가 부진한 중에도 리츠는 좋았던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 큰손들이 한국에서 안정성 있는 실물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크다. 최근 분위기에선 운용사끼리 자산을 사고 파는 것보다 리츠 유사한 상장 구조를 짜고 퍼블릭 시장에서 회수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기관투자가(LP) 관계자는 "투자자끼리 자산을 사고 팔아봐야 남는 것은 많지 않다"며 "앞으로 국내에서도 리츠처럼 실물 자산을 추가로 담아서 상장시키는 사례가 많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TPG도 다른 글로벌 큰 손들처럼 한국 내 투자 전략을 다변화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진 몇몇 경영권 거래 및 카카오모빌리티와 카카오뱅크 등 카카오 계열사 지분 투자에 집중했다. 이제는 본사로부터 크레딧이나 인프라 성 투자를 늘리라는 주문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TPG 본사는 올해 초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는데, 상장사로서 자산 확장 등 성장 전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모빌리티 사업도 확장된 인프라 성격 거래에 포함시킬 가능성이 있다.

      공교롭게 국내 대형 PEF들의 투자 포트폴리오도 글로벌 큰손들과 닮아 있다.

      MBK파트너스가 투자한 골프존카운티가 대표적이다. 골프존카운티는 상장 절차를 밟고 있는데, 골프장을 사들여 덩치를 키우는 것은 공모리츠가 자산을 편입시키는 형태와 유사하다. 골프장 사업은 결국 홀당 얼마씩의 가치를 인정받느냐가 중요한데, 사실상 처음으로 성장 투자(Growth Investment)에 나선 MBK파트너스 입장에선 골프장 사업의 호황이 장기화하는 것이 달갑다. 홈플러스 역시 대표적인 자산 기반 포트폴리오인데, 회수기를 맞아 자산 편입보다는 유동화에 집중하고 있다.

      한앤컴퍼니도 인프라 성격 포트폴리오가 많다. 정통 바이아웃 PEF 이미지가 강하지만, 크레딧 등 투자 전략을 다변화하기 위한 고민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쌍용C&E를 비롯해 SK해운, 에이치라인해운 등이 대표적인 인프라 성격 투자다. 최근 몇 년간은 호텔 자산도 여럿 사들였다. IMM PE도 현대LNG해운, 에어퍼스트 등 인프라 성격의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증권사들은 향후 상장에 나설 가능성이 있을지 관심을 두는 분위기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지분 투자에 집중하던 운용사들도 전략 다변화 차원에서 크레딧과 인프라 등 성격 투자를 늘리고 있다”며 “최근 증시는 안 좋아도 리츠는 좋았기 때문에 당분간 안정적인 실물 자산에 기반한 투자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