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 해 국내 신규 ‘유니콘 기업’이 집계 이래 최다인 7개사로 나타났다. ‘제 2의 벤처붐’이라는 기대도 나오지만, ‘거품’이 꺼질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국내 유니콘 기업의 현황과 과제를 짚어본다.
▲ (사진=게티이미지)
▲ (사진=게티이미지)

2017년 3개사에서 2021년 18개사.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집계를 시작한 이래 4년만에 국내 유니콘 기업의 수가 6배 증가했다. 그 수는 매년 증가했는데,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로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즉 성장형 시장이냐 정체기에 접어든 시장이냐 등을 평가하는 데도 유니콘 기업의 수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는 “유니콘 기업이라는 것이 기존에 없던 방식의 사업모델로 성공시키는 경우가 많이 생겨나다보니 신사업이 많아지는 것”이라면서 “이는 미래 산업 대응이나 좋은 시장에 대한 선점 효과 그리고 국가 경제를 다이내믹하게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탄탄’해야 한다. 특정 대기업 한 두곳이 계속해서 국내총생산(GDP)을 끌고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앞서 성장해 온 빅테크 기업들이 언제 세대 교체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장에서 성장하는 기업들이 국가 경제를 미래에 떠받들 수 있어야 하는 셈인데, 문제는 국내 유니콘 기업들뿐 아니라 많은 스타트업들의 타깃 시장이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에 편중돼 있다는 것이다.

B2B(기업 간 거래)를 키워야 하는 이유가 있다. B2C보다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B2C는 소비자가 앱으로 예약을 한다면 거기서 끝나지만, B2B는 연쇄적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 GDP를 올리는 구조다.

B2B 유니콘 기업 없는 한국...AI 관련 의료분야는 규제에 막혀
B2B 시장을 타깃으로 한 스타트업 가운데 지난해 유니콘 기업에 등극한 한국인들이 창업한 실리콘밸리 기반 스타트업들은 있다. 기업용 채팅·메시징 솔루션 기업인 ‘센드버드(Sendbird)’와 AI(인공지능) 기반 광고 솔루션 기업 ‘몰로코(Moloco)’ 등이다. 모두 B2B를 타깃으로 클라우드 기반의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제공 중이다.

B2B SaaS 비즈니스의 장점은 기업 고객을 상대하다보니 그 규모가 커 큰 시장을 창출할 수 있고, 문화적 차이를 거의 고려하지 않아도 돼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데도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스타트업의 스케일업(기업 외형과 내실 개선을 통한 규모 확대)이 용이하고, 높은 지속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다. 기업 고객 입장에서도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 현재 디지털 전환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관련 비즈니스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선 해당 비즈니스를 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란 것이 업계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B2B 시장은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데, 협업툴을 예로 들자면 잔디나 슬랙과 같은 독립된 소프트웨어보다 정보통신 등 대기업 계열 SI(시스템 통합 서비스 제공) 기업들이 만든 툴을 쓴다”면서 “보안을 주장하지만, 내부 거래를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즉 B2B 스타트업들에게 국내 시장은 높은 성장을 이끌어 줄 대기업은 많지만, 고객은 없는 시장이다.

▲ 센드버드 채팅 서비스. (사진=센드버드)
▲ 센드버드 채팅 서비스. (사진=센드버드)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AI에서도 아직 국내 유니콘 기업이 나오지 않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가 집계한 지난 4월 기준 전 세계 유니콘 기업 1074곳의 산업별 분류를 살펴보면, 유니콘 기업이 많은 부문은 △핀테크(224곳) △인터넷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205곳) △이커머스 및 D2C(소비자 직접 판매) (111곳) △AI (84곳) 등의 순이다. 이 가운데 국내에 있는 유니콘 기업은 핀테크 분야 비바리퍼블리카(토스)·두나무(업비트), 이커머스 및 D2C 분야 위메프·무신사·리디뿐이다.

AI 부문은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 ‘AI 생태계, 스타트업이 말하다’를 통해 국내 환경을 짐작해볼 수 있다. 올 2월 기준 국내 AI 스타트업 총 314개사를 산업군으로 분류했을 때 가장 많은 분야는 의료(20.6%)였다. 바이오·의료·헬스케어·약품·약물·진료·진단 등이 해당 분야에 모두 포함된다. 또 AI 스타트업들은 관련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기술과 서비스 개발의 기초가 되는 데이터 확보와 공유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국내 AI 스타트업 산업군 분포. (사진=스타트업얼라이언스)
▲ 국내 AI 스타트업 산업군 분포. (사진=스타트업얼라이언스)

사실 의료 분야는 유망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국내서 규제에 가로막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이기도 하다. 역시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한국인이 창업한 스타트업까지 범위를 넓히면, 지난해 센드버드·몰로코와 함께 유니콘 기업에 오른 헬스케어 기업 ‘눔(Noom)’이 있다. 체중과 당뇨관리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스타트업 규제개혁 아젠다>의 저자 곽노성 연세대학교 글로벌인재대학 교수는 <블로터>와의 통화에서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규제때문에 더 어려운 분야는 바이오헬스분야다”면서 “IT(정보기술)와 전자기기쪽으로 한국이 많이 발전해 있기 때문에 바이오쪽도 묶으면 상당히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분야인데,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등이 신의료기술평가·보험수가 산정문제 등에 연계돼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규제로 인한 ‘플립(flip)’ 우려도 나온다. 플립은 해외에 법인을 설립해 본사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곽 교수는 “국내 시장 자체가 작기 때문에 해외로 나가는 것 자체는 좋지만, 투자를 진행하는 해외 자본도 국내서 규제때문에 하기 어려우니 해외로 나가라는 조건 등을 둔다든가 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되는 상황은 좋지 않은 모양새인 것 같다”고 말했다.

유니콘 기업, 많다고 좋을까...당분간 부정적 환경 전망
물론 유니콘 기업 수가 많은 것이 무조건 바람직하다고 하긴 어렵다. 앞선 CB인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우리보다 GDP가 높은 일본은 유니콘 기업 수가 5개사(한국은 12개사)뿐이다. 기업주도형벤처캐피탈(CVC)이 투자 시장의 주류를 이뤄왔기 때문이다. 정부보다 대기업이 움직인 건데, 유니콘 기업이 되기 전 적정한 시기에 스타트업들이 대기업에 인수돼 빠르게 엑시트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는 “일본에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이들은 실제 해당 스타트업을 인수할 생각이 있는 대기업들이다”면서 “그래서 가격과 본원적 내재 가치가 거의 일치해 거품이 없고 스타트업들도 빠르게 엑시트를 한다”고 전했다.

질 높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일본의 스타트업DB(데이터베이스) 조사기관인 ‘스타트업DB’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스타트업의 투자유치 금액은 전년대비 53.7% 증가한 1조1888억엔(약 11조8000억원)으로 역대 처음 1조엔(약 10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김소정 코트라 도쿄무역관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투자금은 소수 유망 스타트업에 집중됐고, 대표적으로 SaaS·친환경소재개발·우주산업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가 많이 이뤄졌다.

▲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가 집계한 지난 4월 기준 전 세계 유니콘 기업 가운데 일본과 한국의 유니콘 기업 목록. (사진=CB인사이트)
▲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가 집계한 지난 4월 기준 전 세계 유니콘 기업 가운데 일본과 한국의 유니콘 기업 목록. (사진=CB인사이트)

이에 정부 주도 ‘모태펀드’ 자금과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성장한 한국의 스타트업 업계의 경우 초반 생태계를 빠르게 만든 측면이 있지만, 이제 이를 민간이 받아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모태펀드 조성 근거법인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2005년에 만들어져 세금으로 스타트업을 키우는 방식이 15년 넘게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현재의 역할 분담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생태계가 성장하면서 자연적으로 유니콘 기업이 늘어나는 건 상관없지만, 생태계 성장보다 유니콘 숫자만 많아질까 하는 우려도 있다. 이때 문제는 고평가된 스타트업이 기업공개나 인수합병 등을 통해 엑시트를 하지 못한다면, 좀비 상태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기부가 집계하고 있는 국내 유니콘 기업 목록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다만 당분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니콘 기업이 나오는 속도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해온 글로벌 큰손들이 신중하게 투자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격적으로 투자를 진행했던 일본의 ‘소프트뱅크그룹’은 올해 방어적으로 투자하겠다는 뜻을 최근 밝혔다. 2021회계연도(2021년 4월~2022년 3월)에 1조7080억엔(약 17조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 전문 투자 펀드인 소프트뱅크비전펀드의 투자손실이 3조7388억엔(약 37조원) 정도였다. 미국 헤지펀드인 ‘타이거글로벌’도 올 들어 벌써 170억달러(약 21조원) 규모의 손실을 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벤처캐피탈(VC)인 TBT(티비티)의 임정욱 공동대표는 “소프트뱅크나 타이거글로벌은 상장 직전인 기업가치가 유니콘 기업 정도 되는 곳에 투자를 하는 곳들이다”면서 “그런데 엄청나게 적자를 내고 있고 현재 상장해 있는 테크 기업들의 주가도 다 반토막 났으니,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유동성 축소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VC 대부분이 PE(사모펀드)인데 금리가 오르면 PE들은 돈을 조달해 오는 비용이 높아진다”면서 “그렇게 되면 투자 쪽에 들어오는 돈이 경색될 수 있고 돈이 조이면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유니콘 기업들은 거품이 터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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