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물' 찾아 해외로 본사 옮기는 스타트업…높은 벽 실감

[정교해지는 플립]②
국내보다 해외 규모 더 커, 타깃 시장 '똑똑'
해외 VC와의 잦은 접점에 "나도 넘어가볼까"
비용 크고 장벽 높아 섣불리 플립했다가는 낭패
해외 본사 이전 전략도 좀 더 정교하게
  • 등록 2022-05-03 오전 3:40:00

    수정 2022-05-03 오전 8:44:22

[이데일리 김예린 기자] “나스닥·뉴욕증시 상장을 목표로 한국 법인을 미국 지사로 옮겨 미국에 본사를 두는 거죠. 요즘 한국 스타트업들이 글로벌을 더 지향하다 보니 ‘플립’ 사례가 꽤 나오고 있어요. 다만 성공사례만 있는 건 아닙니다.”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러시에 힘입어 해외로 본사를 옮기는 플립(Flip) 사례가 늘고 있다. 기업용 채팅 메신저 스타트업 센드버드와 국내 1세대 화장품 구독서비스업체 미미박스는 2014년 본사를 이전했다. 기업 협업툴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알로는 2019년 본사를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겼다. 이 기조는 지금까지 이어져 지난 2년간 비건 화장품 브랜드 멜릭서와 기업용 협업 소프트웨어 스윗테크놀로지스가 미국으로 플립했고, 현재 에듀테크 기업 뤼이드와 경기 분석 스타트업 비프로컴퍼니는 플립 절차를 밟고 있다.

플립은 해외에서 성장성을 더 높이 평가받아 투자를 유치하고 해외 증시 상장까지도 넘볼 수 있는 등 다양한 이점이 있지만 리스크도 크다. 비용과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들고 막상 현지로 본사를 옮기고 보니 경영이 녹록지 않은 경우도 다반사다. 이에 따라 사전에 충분한 시장조서에 나서가나 해외 중간지주사를 활용하는 등 스타트업들도 플립 방법을 가다듬고 있다.

[표=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사업 영역도 밸류도 ‘볼륨업’


플립은 국내에서 창업한 회사가 해외 법인을 설립한 후 기존 한국 법인을 지사로 만드는 방식이다. 쿠팡이 작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화려하게 상장하면서 플립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쿠팡은 미국 쿠팡LLC가 한국 쿠팡의 지분 100%를 소유하는 구조로 처음부터 미국에 본사를 설립했기 때문에 전형적인 플립 사례로 볼 수는 없지만, 국내에 영업기반을 갖고 있는 기업이 해외에 본사를 두고 있을 때 어떤 이점을 누릴 수 있는지 증명했기 때문이다. 쿠팡 상장 후 플립은 해외 진출 및 기업공개(IPO)를 위한 수단으로 급부상했다. 박진호 스윗 한국지사장은 “몇 년 전부터 국내 기업들의 해외 플립 성공사례들이 늘면서 최근 더 활발하게 진행되는 분위기”라며 “주변에서 컨설팅이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스타트업들이 플립을 추진하는 이유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투자를 유치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어서다. 방식은 비즈니스 모델을 따라가는 것이 기본이다. 본업 규모와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만큼 시장 규모와 고객 니즈가 큰 곳으로 본사를 옮긴다. 축구 데이터 분석업체 비프로컴퍼니가 국내 창업 초기 K리그와 유소년축구단을 대상으로 사업하다가, 축구 시장 규모가 더 큰 유럽 위주로 고객을 늘리면서 플립을 결정한 게 대표적이다. 비건 역시 우리나라보다 북미와 유럽 규모가 더 크기 때문에 멜릭서 등 관련 업체들의 플립 사례가 하나둘 나오고 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SaaS) 분야에서 플립 사례가 많이 나타나는 이유도 국내보다 해외에서 기술 가치와 시장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센드버드와 스윗, 알로 모두 북미 B2B 영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SaaS 업체다. 김영민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상무는 “국내 투자자들이 기술 기반 업체 투자에 보수적이어서 우리나라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며 “이들이 해외 전시회 등에 나가면 해외업체나 투자기관들의 관심을 받는 경우가 있고, 이후 해외에서의 투자나 시장 가능성을 검토한 뒤 플립을 진행하는 케이스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동남아시아로 법인을 옮기는 등 국가가 다양해지는 분위기다. 디지털 자산시장의 발달에 따라 토큰 발행 법인들이 많고 암호화폐공개(ICO) 허용 등 규제가 덜한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기는 크립토 관련 기업들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해외 VC와의 잦은 접점도 한몫

해외 투자자와의 접점이 많아진 것 역시 최근 플립이 늘어난 배경으로 꼽힌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스타트업에도 주목하면서 해외 VC가 직접 투자하는데 그 중 일부는 제대로 육성해보겠다며 자국으로 법인 전환을 요구한다는 것. 미미박스 역시 와이콤비네이터 투자유치 후 플립했고, 뤼이드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투자를 받은 뒤 소뱅의 각종 지원 아래 본사를 옮기고 있다. 양유 역시 최근 마무리한 230억원 규모 프리 시리즈B 라운드에서 싱가포르 액셀러레이터 어썸벤처스와 미국 VC 콜라보레이티브펀드 등 해외투자자를 처음 유치했다. 콜라보레이티브펀드는 나스닥 상장사 비욘드미트에 투자한 곳으로, 비건 섹터에서 상장 경험이 있어 양유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나온다.

다른 VC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액셀러레이터들은 투자와 컨설팅 대가로 스타트업의 지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존에는 이런 AC가 와이콤비네이터밖에 없었지만 요즘 워낙 해외 AC가 늘었고 이들의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국내 업체가 많아진 만큼 플립을 고민하는 업체는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미국의 투자자들이 한국의 증권발행시장에는 익숙지 않아 보다 투자하기 편하면서도, 옆에 직접 두고 키울 수 있도록 플립을 권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장벽 높은 플립…정교해지는 해외 본사이전

그러나 플립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절차가 복잡한데다 각종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플립을 하는 데에도 자금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해외로 본사를 옮겼는데 생각했던 만큼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지 못하거나 아예 투자를 유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현지에서 영업이나 직원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상당하다. 이 때문에 플립에 나섰다가 다시 한국으로 역플립, 플립백하는 스타트업이 나오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휴이노는 미국으로 플립했다가 2019년 다시 한국으로 역플립했다.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하면 더 큰 규모로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투자유치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되레 한국에서 바이오 투자붐이 일기 시작해 국내로 본사를 다시 옮겼다.

때문에 아예 창업 단계부터 해외에 본사를 설립하거나 해외 중간지주사를 설립하는 등 실패확률을 줄일 방법을 택하는 스타트업들이 나오고 있다. 사전조사나 현지 투자의향을 사전에 꼼꼼하게 진행하는 것도 필수가 됐다.

한 VC 업계 관계자는 “실제 북미투자자들이 관심이 확실히 있는지 만나보고, 시장 플레이어들에 회사 상품·기술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봐야 한다”며 “경영진이나 멤버들이 확신이 들 때 플립을 해야 성공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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