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차기 정부와 '제2 벤처 붐'

'제2 벤처 붐'이 거세게 불고 있다. 지난해 벤처투자 실적은 7조6802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다. 종전 최대 규모인 2020년 4조3045억원을 무려 3조4000억원 경신할 정도로 매서운 성장세를 보였다. 투자 열기에 부응하듯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국내 유니콘 기업은 지난해 7개사가 추가 합류하며 총 18개사로 늘었다. 2017년 국내 유니콘 기업이 3개사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양적 성장 뒤에 가려진 그림자도 짙다. 유니콘 기업으로 등극한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내수 기반의 플랫폼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해 신규 유니콘이 된 기업 대다수도 e커머스, 부동산 중개 등 서비스 기반 산업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등 혁신기술 분야에선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양적인 변화가 축적되면 질적으로 변화한다는 '양질 전환의 법칙'이 저절로 성립되는 건 아니다. 벤처기업 이름에 걸맞은 혁신성을 보여 주는 기업이 나와야 제3, 제4 벤처 붐으로 이어지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격상시키고 부처명에 '벤처기업'을 넣으며 양적 성장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질적 성장을 강화할 때다. 차기 정부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기 5년이 제2 벤처 붐이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지 벤처기업이 한국 경제의 신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할지 주요 분기점이 되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이 벤처기업 성장성에 주목하고 생태계 구축을 위한 혁신에 나서 줄지가 관건이다.

벤처업계는 대선정국에서 정치권에 정책을 제안하는 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책 제안 첫 줄에는 '시장 친화'가 올라가 있다. 갈라파고스 규제 전면 폐기 등 규제 거버넌스 혁신과 신산업 진입 규제 개혁 등이 골자다. 구체적으로 원격의료 규제 개선, 핀테크 산업 네거티브 방식 규제 체제로의 전환 등을 꼽았다. 원격의료는 2000년 첫 시범 사업 이후 20여년 동안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다. 비상장 벤처기업의 복수의결권 허용 법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요구사항은 쌓여만 가는데 속 시원한 답이나 해결책이 마련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 대선에서 업계가 요구한 160여개 개선 사항 가운데 30여개만 이행됐을 뿐이다. 정치권은 그동안 벤처업계 목소리에 무관심하고 소극적이었다는 이야기다. 만약 21대 대선에서도 벤처업계 푸념이 반복된다면 제2 벤처 붐은 이미 사그라들었을 것이라는 점을 정치권은 명심해야 한다.

[ET톡]차기 정부와 '제2 벤처 붐'

조재학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