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작은 바이오벤처가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 트렌드를 이끄는 ‘이너서클’에 들어갔다고 보면 됩니다. 미국 시장 공략에 든든한 우군을 얻은 셈이죠.”

'AI로 암 진단' 루닛에 꽂힌 美 바이오 큰손들
인공지능(AI) 기반 암 진단 솔루션을 개발하는 토종 바이오벤처 루닛이 미국의 대형 헬스케어 전문 벤처캐피털(VC)을 투자자로 맞았다. 1000개가 넘는 국내 바이오벤처 가운데 미국 헬스케어 전문 VC의 투자를 받은 것은 루닛이 처음이다. KAIST 힙합동아리 동기생 6명이 2014년 의기투합해 창업한 루닛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에 큰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루닛은 23일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로 720억원을 유치했다고 밝혔다. 액체생검 대표 주자인 미국의 가던트헬스가 루닛에 300억원을 투자한 지 4개월 만이다. 투자자 면면을 보면 가던트헬스의 전략적 투자만큼이나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미국 헬스퀘스트캐피털과 캐스딘캐피털, ACS브라이트에지를 비롯해 홍콩 타이번캐피털, 싱가포르 NGS벤처스가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네이버가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했다.

헬스퀘스트는 1조원 이상을 굴리는 미국의 대표적인 헬스케어 전문 VC다. 존슨앤드존슨, 머크, 화이자 등 글로벌 빅파마들과 파트너십을 맺은 경험이 있다. 수십 곳의 유망 바이오벤처가 투자 포트폴리오에 담겨 있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기자와 만나 “헬스퀘스트가 아시아 회사에 투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헬스퀘스트는 이번 프리IPO에서 가장 많은 약 240억원을 투자했다. 서 대표는 “미국에 수많은 유망 바이오벤처가 있는데도 루닛을 선택한 것은 그만큼 우리 제품에 경쟁력이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루닛 입장에서 이들은 천군만마와 같다.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헬스케어 시장에서 탄탄한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닛의 폐 질환, 유방암 진단 솔루션이 미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지 대형 병원과 보험사 등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민간 중심으로 의료산업이 발전하다 보니 보험급여 체계 등이 국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서다.

서 대표는 “관상동맥질환을 진단하는 미국 AI 진단업체 하트플로가 헬스케어 전문 VC를 투자자로 유치한 덕분에 창업 11년 만에 보험수가를 인정받으며 기업가치가 급등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헬스퀘스트의 주요 출자자(LP)는 미국 대형 병원들이고 ACS브라이트에지는 미국 암학회(ACS)가 출자한 임팩트 펀드”라고 했다.

루닛이 국내 바이오벤처로는 처음으로 헬스퀘스트 등에서 투자를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탄탄한 실력을 기반으로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공략 대상으로 삼고 회사를 성장시켜왔다. 직원 약 250명 가운데 30명이 외국 국적이다. 이들 가운데 16명은 네덜란드와 브라질, 노르웨이, 프랑스 등 현지 직원이다. 서 대표는 “서울 본사에도 외국인 직원이 많아 전체 회의 때는 동시통역을 쓰기도 한다”며 “투자자 입장에서는 한국 회사가 아니라 글로벌 회사에 투자한 것”이라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