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헬스 정책, B학점…청사진은 좋지만 디테일은 보강해야

[혁신성장 정책 4년 성적표] ⑫끝...바이오헬스 정책

헬스케어입력 :2021/05/11 07:47    수정: 2021/05/11 15:06

문재인 정부는 2018년 혁신성장을 가속화할 8대 선도사업에 바이오헬스를 추가한 데 이어 이를 3대 신산업으로 지정, 지원을 늘려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틈날 때마다 바이오헬스 분야 육성 의지를 밝혀왔다. 

지난 2019년 5월 열린 ‘바이오헬스 국가비전 선포식’에서도 “주요 선진국들은 바이오헬스 산업에 주목하고 있다”며 “매년 5% 이상의 성장률 속에서 3만 개 이상의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밝혀 우리나라 바이오헬스 육성 당위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인재와 기술력, 그리고 도전정신에 힘입어 바이오헬스 세계시장을 앞서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4년, 정권 초기부터 역점을 두고 추진한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은 소기의 성과를 가져왔다. (사진=김양균)

이러한 정부의 의지는 소기의 성과를 가져왔다. 2019년 바이오분야 7조5천억 원 규모의 기술수출 성과를 이뤘다. 혁신인재 1만143명에 대한 지원과 해외 우수연구자 218명 유치 등의 전문인력도 확보하고 있다.

바이오헬스 분야 연구개발(R&D) 경쟁력도 상승했다. 과학인프라 순위는 세계 3위로, 관련 국가경쟁력은 세계경제포럼(WEF) 평가기준 13위로 올라섰다. 정부 R&D 투자액은 지난해 24조2천억 원을 돌파했다. 100만 명 규모의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사업도 시작됐다.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을 위한 법·제도도 정비되고 있다.

코로나19는 정책 추진을 가속화시킨 계기가 됐다. 전 세계는 백신과 치료제를 비롯해 방역 관련 물품을 안보의 영역으로 간주한다. 바이오헬스 분야는 산업 이상의 의미로, ‘보건안보’의 개념에 포함된다. 이는 곧 글로벌 제약바이오산업의 시장 확대와 경쟁 강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추세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마스크, 진단검사키트, PCR 검사 시약 및 키트, 진단검사 원부자재 등을 비롯해 항체치료제 등을 해외로 적극 수출 중이다.

지디넷코리아가 만난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었다. 아쉬운 점은 ‘고도화’다. 적지 않은 투자액이 투입되고 있지만, 산업 생태계 조성은 아직 요원하다.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 전략을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 ▲제약·바이오 지원 ▲규제 및 허가 간소화 ▲전문인력 양성 등 네 분야로 나눠 분석해본 결과, 뚜렷한 성과는 있지만 고도화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견해가 주를 이뤘다.

데이터 3법 국회 통과 등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을 위한 법적 근거와 여러 사업이 추진 중이지만, 관련 생태계가 조성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진=픽셀)

■ 보건의료 빅데이터 ‘다소 모호’

지난해 1월 데이터 이용을 활성화하자는 ‘개인정보 보호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 이른바 데이터 3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데이터 3법은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을 위한 법적 근거가 됐다.

정부가 보건의료 빅데이터에 주목하는 이유는 미래 경제에서 빅데이터 활용을 통한 부가가치가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 글로벌 보건의료 분석 시장은 연평균 25% 가량의 성장률이 예측되는 분야다. 각 시장조사 기관은 보건의료데이터 분석 활용을 미래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유망 분야로 주목하고 있다.

데이터 3법이 시행됐다고는 하지만 국내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김태형 테라젠바이오 상무는 규제 완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 상무는 “예산은 투입되고 있는데 아직 ‘놀이터’는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예산 투입에 앞서 기업이 적극 뛰어들도록 규제 개선과 가이드라인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돼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빅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 서비스나 가치창출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도 “정부는 더 명확한 그림을 보여줘야 한다”며 “추상적 수준에서 정부 지원은 과도하다”고 조언했다.

신약 및 바이오 R&D 정부 투자액은 결코 적은 수준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지만, 세밀한 투자 구성이 요구된다. (사진=픽셀)

■ 세밀한 제약·바이오 지원 필요…생태계 조성 신경 써야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신약 및 의료기기 관련 정부 R&D 투자를 연간 4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표적항암제와 세포·유전자 치료제 등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민간 벤처투자자 공동 ‘연계형 연구개발 제도’도 도입했다.

뿐만 아니다. 스케일업 펀드를 통해 앞으로 5년간 2조원 이상의 정책금융이 투자될 예정이다. 세액공제 대상에는 바이오베터 임상시험비가 추가됐으며 이월기간도 연장된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수준과 비교하면 아직 한참 못 미친다는 비판도 있지만, 우리나라 GDP 대비 신약 및 바이오 R&D 정부 투자액은 결코 적은 수준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김태형 상무는 ‘스마트’ 투자를 주문했다. 적재적소에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정부는 확실히 의지를 갖고 있지만 효과성은 다소 의문”이라며 “한국 실정에 맞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투자 대상을 개별 기업보다는 공적 연구기관으로 하고, 산학 연계가 이뤄지는 생태계가 활발히 이뤄지도록 방향을 보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공적 연구가 산업계와 적절히 맞물리도록 세심한 투자 설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엄승인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는 정부 투자를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엄 상무는 “정부 입장에서는 기초과학과 산업계 사이에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부가가치를 고려하면 산업계에 좀 더 활발한 지원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4대 15개 분야 규제 혁신안. (표=보건복지부)

■ ‘발목 잡는’ 인허가 규제 대신 선진적 규제로

정부는 작년 1월 ▲신산업 연구 환경 조성 ▲혁신의료기기 육성 ▲건강관리 서비스 활성화 ▲이중규제 등 불필요한 규제 철폐 등 4대 분야 15개 개선과제를 통해 바이오헬스 분야 핵심규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소관부처는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환경부, 고용노동부, 식약처 등이다.

김윤 교수는 효율적 규제를 위해 규제기관 사이에 역할 구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 규제기관이 저마다의 기준으로 제각각 규제를 하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규제의 기본인 위험도 평가에서 세밀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태형 상무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신기술에 대해 기업보다 더 선제적인 조치를 한다는 점을 주목한다. 그는 “미국과 유럽연합 등은 기업이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라가는 형국”이라면서 “기업이 경쟁력보다 단가싸움으로 흐르는 것에 대해 규제기관의 빠른 리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정부의 규제 효율화 방침이 자칫 경쟁력에 찬 물을 끼얹을 가능성도 있음을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일본 후생성의 깐깐한 규제 및 허가 절차를 거친 제품은 미국과 유럽연합에서도 인정을 받는다”며 “규제 완화는 도리어 경쟁력을 잃게 만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엄승인 상무도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 확보는 충분한 검토 하에 이뤄져야 한다”며 “규제가 효율적이지 못할 경우에 일부 수정이 이뤄져야지 간소화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바이오헬스 산업 분야에서는 구인난이 심각하다. 단편 지원으로 전문인력 양성은 단 기간에 이뤄지기 어렵다. (사진=픽셀)

■ 전문인력 구인난 심각…단편 지원으론 한계 있어

바이오헬스 기업에서는 쓸 만한 인력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대기업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중소·벤처 바이오업체의 구인난은 심각한 지경이다. 앞서 거론한 여러 분야 가운데에서도 특히 전문인력 양성이 어려운 이유는 인력 배출이 단기간 내 이뤄지지 않다는 점이 주요 요인이다.

이태규 전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신약개발센터장은 특히 벤처업계에서의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투자는 받아도 사람이 없어서 회사가 망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전문성을 갖춘 인력은 대학에서 트레이닝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전 센터장은 “인력 부족은 의약품 생산 현장뿐만 아니라 연구 분야에서도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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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 교수는 비록 정부가 적극적 지원을 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인력 양성으로 이어지려면 제도의 세밀한 구성이 보강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현 인력 정책은 단편적 지원에 머물고 있다”며 “기초 의학 분야 연구자의 경우, 대학 교수 자리는 적을 뿐더러 연구기관에서도 처우 등 관료주의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고 지적했다.

김태형 상무는 민간보다 정부 기관, 그 중에서도 규제기관 내 전문인력의 대거 유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상무는 “해외의 경우, 규제기관 종사 인력의 처우가 높다”며 “규제기관내 고급인력이 많아지면 의약품 등 허가 과정에 효율성이 극대화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규제기관내 전문인력 부족으로 제약사가 모든 규제 과정을 전부 경험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이는 예산낭비를 초래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