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요즈마펀드
한국 모태펀드보다 규모 작지만
벤처 투자시장 활성화 기여

정부나 지자체에서 벤처펀드를 담당하는 이들에게 ‘성과’를 물으면 십중팔구 이런 답이 돌아온다. 수익률 ○%, 펀드조성 규모 ○○억원. 겉으로 보이는 숫자에 집착한 결과다. 하지만 우리나라 모태펀드가 벤치마킹했던 이스라엘 요즈마펀드는 수익률보단 역할을 더 강조했다. 창업 초기 기업에 펀드의 100%를 쏟아부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참고: 우리나라 벤처펀드는 30.7%.] 우리가 요즈마펀드를 통해 배울 점은 뭘까.

이스라엘은 요즈마펀드를 이용해 텔아비브를 창업하기 좋은 도시로 만들었다.[사진=뉴시스]
이스라엘은 요즈마펀드를 이용해 텔아비브를 창업하기 좋은 도시로 만들었다.[사진=뉴시스]

정부든 지자체든 벤처펀드를 조성할 때면 늘 ‘펀드 규모’를 강조하는 보도자료가 뒤따른다. 이후 펀드 조성 규모가 예상보다 많으면 ‘큰 성과’라면서 또다시 보도자료를 낸다. 중기부는 최근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청산한 벤처펀드의 수익률이 연평균 5.7%에 달했다는 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들만 놓고 보면 국내 벤처펀드는 아무런 문제없이 잘 운용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 그런지는 의문이다. 정부나 지자체들은 자신들이 출자한 벤처펀드의 성과를 ▲펀드 조성 액수나 수익률 ▲투자기업 수 ▲투자기업 대비 기업공개(IPO) 비중 등으로만 따지려는 경향이 있어서다.

사실 벤처펀드의 성과를 평가하려면 좀 더 다양한 분석이 필요하다. 한국벤처창업협회는 2020년 국회예산처의 용역을 받아 진행한 ‘중소기업 모태조합(모태펀드) 출자사업의 효과성과 개선방향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벤처펀드 성과의 평가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창업 초기기업 투자 비중 ▲미래성장산업 투자 유무 ▲펀드 운용 프로세스의 공정성ㆍ합리성ㆍ효율성 확보 여부 ▲수익률ㆍ회수율ㆍ집행률 ▲민간 벤처투자산업 활성화 유무 ▲투자기업의 실제 성장성ㆍ수익성ㆍ안정성ㆍ고용창출 현황(향후 모니터링 포함) 등이다. 

물론 이중 일부 수치는 한국벤처캐피탈협회나 중기부가 공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펀드 운용 프로세스의 공정성, 투자기업의 안정성 등 비정형적인 분석내용은 거의 없는 데다, 정부나 지자체의 성과를 별도로 구분해 놓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벤처펀드를 통해 올렸다는 성과에 ‘거품’이 껴있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벤처펀드는 얼마나 과대 포장돼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는 이 질문을 풀기 위해 한국의 벤처펀드 운용 현황과 이스라엘의 요즈마펀드를 비교했다. 중소기업연구원이 2019년 1월 내놓은 ‘이스라엘 창업생태계의 전환과 정책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참조했다.[※참고: 정부는 2005년 모태펀드를 만들 때 바로 이 요즈마펀드를 참고했다. 두 펀드는 공공성을 토대로 벤처투자 시장을 키운다는 목표도 비슷하다.]

우선 두 펀드는 운용기간이 달랐다. 우리나라 모태펀드의 기간은 2005년부터 30년이다. 반면 이스라엘 요즈마펀드는 1993~ 1990년 딱 8년 운용했다. 정부의 출자 규모도 다르다. 우리나라 정부는 모태펀드에 총 5조6000억원을 출자했다. 

각 정부 부처나 지자체가 벤처투자를 위해 추가로 출자한 금액을 합치면 출자금은 훨씬 더 많다. 반면 이스라엘의 요즈마펀드는 1억 달러(당시 평균 환율 적용 시 약 807억원)를 출자했다. 우리나라 모태펀드의 운용 기간이 3.7배 길고, 출자금은 69.4배 더 많은 셈이다. 

해당 펀드가 투자한 기업들의 업력이 어땠는지도 살펴보자. 우리나라 벤처펀드들은 창업 초기 단계에 32.5%, 중기 단계에 41.3%, 후기 단계에 26.2%를 투자했다(2019년 기준). 반면 이스라엘 요즈마펀드는 100%를 창업 초기 단계에 투자했다.[※참고: 투자 단계를 나눠서 투자하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장단점이 있어서다. 문제는 중ㆍ후기 단계 투자가 더 많은 만큼 투자기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야만 벤처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부나 지자체가 투자금 손실이 두려워 안전한 기업에만 투자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두 펀드의 차이점은 또 있다. 우리나라 벤처펀드는 정부나 지자체가 선제적으로 펀드를 조성하고, 민간 벤처투자사들이 참여하는 구조다. 쉽게 말해, 정부 주도라는 거다. 하지만 요즈마펀드는 민간이 먼저 투자하고 정부가 매칭 투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민간 주도 시스템이다. 

한국에선 관이 벤처펀드를 주도하지만, 이스라엘에선 민간이 주도한다. 사진은 권칠승 중기부 장관.[사진=연합뉴스]
한국에선 관이 벤처펀드를 주도하지만, 이스라엘에선 민간이 주도한다. 사진은 권칠승 중기부 장관.[사진=연합뉴스]

자! 이제 두 펀드의 성과를 비교해보자. 벤처펀드가 투자한 기업 가운데 IPO를 한 기업의 수는 얼마나 될까. 한국의 경우 2907개 중 354개(12.2%) 기업이 IPO에 성공했다(2016~2020년 청산한 벤처펀드 기준). 요즈마펀드는 1993년부터 2000년까지 217개 기업에 투자를 했고, 이 가운데 122개(56.2%) 기업이 IPO를 하거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아 인수됐다. 

민간 벤처투자(VC) 시장을 육성하고 활성화한다는 목표는 제대로 달성했을까.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12년 1조2333억원이었던 민간 VC 시장 규모는 2020년 4조3045억원으로 8년 만에 3.5배 성장했다. 반면 이스라엘에선 1992년 2700만 달러였던 민간 VC 시장이 1998년 6억5300만 달러로 24.2배 성장했다. 

우리나라가 8년간 이뤄낸 성과를 고작 6년 만에 넘어선 셈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요즈마펀드를 통해 VC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텔아비브(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수도로 불리는 도시)를 창업하기 좋은 도시로 만들었다.[※참고: 스타트업 연구센터인 스타트업블링크에 따르면 텔아비브는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도시 순위 7위(2020년 270개 도시 기준)다. 서울은 2017년까지 30위권에 머물다 지난해 20위를 차지했다.] 

이렇게만 놓고 봐도 우리나라 벤처펀드는 질적 성과는 신통치 않다. 요즈마펀드와 비교했을 때 투자금 규모는 크고, 투자기간은 길지만 VC 시장 활성화나 투자기업들의 성장성 지표는 훨씬 낮았다. 정부나 지자체의 벤처펀드 홍보자료를 무색하게 만드는 결과다. 그렇다면 벤처펀드를 좀 더 효율적으로 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 역시 ‘이스라엘 창업생태계의 전환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는 담겨 있다. 

“벤처투자 시장 확대에 따라 민간자금 유입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정책성 투자 비중이 크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민간투자자들이 투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콜옵션(주식 등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을 제공하거나 투자성과에 따라 정책자금 지원을 차등화하는 등의 인센티브도 고려할 만하다.” 쉽게 말해, 정부와 지자체는 ‘마중물’ 역할만 하란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나 지자체가 홍보에 열을 올리는 ‘벤처펀드’의 성적표는 다시 작성해야 한다. 펀드 조성 규모, 수익률을 비롯한 양적 숫자보다 중요한 건 VC 생태계의 활성화, 모험자본의 역할 비중, 투자기업의 안정성 등 질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벤처펀드가 ‘마중물 역할’을 얼마나 잘했는지 검증할 수 있는 성적표가 필요하단 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