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송주오 기자] 복수의결권이 국회에서 잠들어 있다. 창업주의 경영권을 강화해 안정적인 사업을 도모한다는 취지에 여야 모두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논의가 공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복수(차등)의결권’ 공청회를 열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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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결권을 두고 여당 내 움직임이 엇갈리고 있다. 대선 후보들로 꼽히는 이들은 복수의결권 처리에 적극적인 제스처를 보이며 ‘친기업’ 행보로 활용하고 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일 손경식 경총 회장을 만나 “규제 개혁 법안 중 경제계에서 통과 요청한 법안부터 우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벤처기업차등(복수)의결권도입을 우선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세균 전 총리도 6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단을 만나 복수의결권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여당의 새 지도부는 복수의결권 처리에 소극적이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야당의 거부로 중소·벤처기업을 위한 시급한 민생법안인 비대면벤처법 논의가 지연됐다”며 “5월 임시국회에서 꼭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한 관계자도 “민주당이 그동안 몇 차례 논의한 비대면벤처법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며 “아직 논의도 제대로 하지 못한 복수의결권 등은 밀려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복수의결권을 보장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 3건이 계류 중이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달 13일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었지만, 이후 논의는 전무하다.
다만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최근 “제2 벤처 붐 열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벤처창업의 역동성을 높여나갈 제도 혁신이 필수적”이라며 “관계부처는 벤처창업 생태계 보강, 규제샌드박스 등 규제혁파, 기업형벤처캐피털(CVC)보유허용 시행준비와 비상장 벤처기업 복수의결권 도입입법 등에 가속도를 내 달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등은 복수의결권이 경영권승계로 악용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14일 논평을 통해 “법 개정을 찬성하는 진술인들조차 복수의결권은 오히려 상장(IPO)할 때 더 필요하고, 대다수 벤처가 아닌 일부 필요로 하는 벤처기업을 위한 것이라는 견해도 밝혔다”며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십수년간 전경련을 통해 이 제도의 도입을 끈질기게 주장해온 재벌들을 위한 법안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최근 논평에서 “복수의결권 도입 법안은 지난 4월 13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산자위)에서 개최한 공청회에서 벤처기업 투자 및 활성화와 무관함이 드러났다”며 “결국 재벌 세습에 악용될 위험이 너무 크다는 점에서 반대하는 산자위 의원들까지 있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