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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진의 현장에서] 라지캡 매물에 쏟아지는 우려

“그 회사, 잘 팔아야 할 텐데요. 지금 장이 너무 좋고 매물들의 몸값이 비싸져서, 아마 고민이 많을 겁니다.”

연초부터 대형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보유한 라지캡(large-cap, 기업가치 상위 기업) 매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엑시트(투자회수) 시점이 돼 매물로 나온 기업들이 인수자를 찾기 위해 줄지어 있는 모양새다. 일부 기업의 몸값은 수조원대까지 거론된다. 지난해부터 인수·합병(M&A)시장이 달아오른 데다 풍부한 시중 자금까지 뒷받침되면서 매각가에 대한 눈높이 역시 치솟고 있다.

MBK파트너스가 보유한 두산공작기계(2조원대), 한앤컴퍼니의 한온시스템(10조원대)과 쌍용양회(3조원대), IMM프라이빗에쿼티(PE)의 대한전선(7000억~8000억원대) 등이 대표적인 라지캡이다. 이 회사들은 PEF 들이 통상적으로 엑시트 기간으로 잡는 4~5년차에 접어들거나 이미 이 기간을 훌쩍 뛰어넘은 포트폴리오들이다.

이들 PEF는 기업가치가 높아진 상황을 ‘엑시트 적기’로 판단하면서도 높아진 가격에 오히려 고민이 커지고 있다. 유동성이 커진 시장이라 해도 수조원대 회사에 선뜻 손을 뻗을 원매자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수월한 엑시트를 위해 몸값을 깎는 ‘지분 다이어트’에 나선 모습까지 종종 포착된다. 보유 지분을 블록딜로 매각, 지분율을 낮춰 원매자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인수 의향을 높이려는 시도다. 예컨대 최근 IMM PE는 대한전선의 지분 5%가량을 매도했고, 스틱인베스트먼트 역시 대성엘텍 주식을 블록딜로 8%가량 팔아 지분율을 낮췄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지분을 조정해 원매자를 태핑(수요조사)하기 위한 시도”라며 “매각 과정에서의 안정적인 차익실현, 지분 다이어트를 통한 인수 부담 낮추기 등 두 가지 토끼를 잡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에 올해는 PEF 간 ‘손바뀜’, 즉 세컨더리 딜(secondary deal)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수조원대 매물을 감당할 수 있는 투자자로 역시 수조원대 블라인드펀드를 보유한 대형 PEF들이 우선 거론되는 추세다. 실제로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8조원 규모로 조성한 5번째 블라인드펀드로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다.

다만 PEF의 작동 원리를 생각하면 이런 관측조차도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PEF는 성장여력이 보이는 회사를 수긍 가능한 가격에 사들여 기업가치를 올린 다음, 좋은 가격에 되팔아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이들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이미 수조원대로 불어나 버린 회사들을 5년 후 얼마에 되팔 수 있을지, 그때도 시장유동성이 풍부할지, 매물을 받아줄 플레이어가 있을지, 냉정하게 저울질하고 있다. 대형 PEF들의 엑시트는 최근 들어 자주 거론되지만, 신규 투자는 잘 보이지 않는 이유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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