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8월 07일 09:07 자본 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정부는 벤처가 미래라는데…시장 회복에도 VC 주가는 지지부진
벤처캐피탈(VC) 상장사들이 최근 모처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 VC들이 공모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저평가 구간에 머물러 있다. '제2벤처붐'이라 불릴 정도로 상장과 인수합병(M&A)을 통해 '대박'을 낸 스타트업들의 이야기가 잇따르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부진한 주가에 2016년부터 작년까지 꾸준히 상장이 이뤄지던 VC들의 상장 소식도 끊겼다. VC들에 대한 저평가가 이어지다보니 대부분 VC들이 상장,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력으로 펀드 규모를 확대하기보다 정부 출자 사업에 의존하면서 투자 매력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스닥 회복에도 VC 주가는 고점 대비 '반토막'

7일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 매체인 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상장한 VC 8개 가운데 절반이 공모가 이하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범위를 2018년 이후로 좁히면 6개 중 4개가 공모가를 회복하지 못했다. 2018년을 전후로 도달했던 8개 상장사가 도달했던 고점과 비교하면 평균 하락율이 46%로 반토막이 났다.

이는 그마저도 6월 이후 주식 시장이 소위 'BBIG'로 불리는 바이오·배터리·인터넷·게임 관련 성장주를 중심으로 주가가 회복되면서 개선된 수치다. 코스닥 지수가 6일 장마감 기준 854.12포인트로 코스닥 시장이 최고 활황을 기록했던 2018년 초 수준에 도달한 점을 감안하면 VC들의 주가 회복세는 지지부진한 셈이다.

VC 주가의 부진은 최근 정부가 '제2벤처붐' 조성을 목표로 역대 최대 규모의 공적 자금을 투입하면서 벤처투자 시장이 활황을 이어가고 있는 것과는 괴리가 큰 상황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신규 벤처투자액은 4조 2777억원으로 2015년(2조 858억원)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VC들의 투자로 성장한 쿠팡, 크래프톤, 비바리퍼블리카 등이 스타트업을 넘어 대기업과 치열하게 경쟁을 이어가는 등 가시적 성과도 적지 않다.

수익률 등 실적도 꾸준하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9년 말까지 해산이 완료된 펀드(투자조합) 816개의 평균 내부수익률(IRR)은 4.4%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상위 25% 펀드의 IRR은 17.5%에 달한다. DSC인베스트먼드(24%), 미래에셋벤처투자(15~20%), 컴퍼니케이(17%)등 주요 상장 VC들의 청산펀드 수익률은 20%대에 육박한다.

올해 3월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12개 상장 VC의 평균 당기 순이익률은 29.2%를 기록했다. △성장하는 시장 △높은 기대 수익률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주가 상승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는 "VC는 성장주 수백개를 포트폴리오로 담고 있는 인덱스 펀드와 같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기관들 입장에선 너무 시총이 작아 손 대기 어렵고, 개인들의 관심도 적은 현실"이라고 말했다.

◆투자 정보 공개 어려워..."적극적 IR 필요"

투자업계선 자본금이 적고 대부분 연기금, 공제회, 모태펀드 등 공적 투자기관들로부터 자금을 위탁 받아 운용하는 VC의 특성이 저평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복수의 LP로부터 자금을 출자 받아 구성한 블라인드 펀드의 경우 일반적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때로 일부 포트폴리오가 공개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례적일 뿐 아니라 펀드에 출자한 LP들로부터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

투자 포트폴리오 공개가 어렵다보니 그간 기관 투자자들에 대한 IR(기업설명)도 전무하다시피 했다. 미래에셋벤처투자 관계자는 "정보 제공이 쉽지 않다보니 대부분 VC들이 IR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설령 모든 정보를 공개하더라도 포트폴리오가 워낙 많아 기관 입장에서 그걸 분석해 목표 주가를 산정하는 것도 어려워 기관들의 외면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가가 부진하다보니 작년까지 줄을 이었던 VC들의 상장 소식도 끊겼다. 건당 투자금액이 큰 대신 기대 수익률이 높은 글로벌·스케일업 투자를 위한 펀딩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자금 확보를 위한 수단인 유상증자에 성공한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많은 VC들이 한 때 CB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는데 주가가 지지부진하다보니 모두 주식 전환 없이 상환이 이뤄졌다"며 "상장을 타진하는 VC들이 몇 있지만 기업 가치에 대한 평가가 낮다보니 지지부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벤처투자 시장이 공적 자금 의존도를 줄이고 민간 주도의 독립적 시장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시장의 저평가를 극복하기 위한 VC업계 차원의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성인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은 "운용사가 자신만의 전략으로 자유롭게 투자하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펀딩에 있어 정부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한다"며 "주식 시장 참여자들이 VC가 투자한 포트폴리오의 잠재력을 투자에 반영할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