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서비스 안내

재계 순위 뒤흔드는 창업 1세대 기업들-진격의 카카오 4년 만에 65위→23위 부영·미래, M&A·해외 진출로 10위권

  • 노승욱·나건웅·반진욱·박지영 기자
  • 입력 : 2020.07.10 13:07:50
1960~1980년대에는 창업주 세대에 대기업이나 재벌로 단숨에 급성장하는 경우가 흔했다. 정부 주도로 대기업 중심 수출정책을 펼친 고도 성장기였던 덕분이다. 요즘은 달라졌다. 정부의 정책 특혜는커녕 글로벌 저성장 시대여서 수출도 쉽지 않다. 그래도 창업주 세대에 대기업 반열에 오른 ‘신데렐라’ 기업은 있다. 비결은 IT 플랫폼 전략과 비즈니스 모델 혁신, 적극적인 인수합병(M&A)과 해외 시장 개척, 차세대 먹거리인 바이오 시장 선점 등이다.



유형1. IT벤처 약진…플랫폼의 힘!

▶카카오·네이버·넥슨·넷마블 ‘4강’

65 → 50 → 39 → 32 → 23.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운영하는 카카오의 지난 5년간(2016~2020년) 대기업집단 공시 순위 변동이다. 2016년 자산 5조원을 넘겨 주요 IT기업 중 처음 준대기업집단에 선정된 후 매년 앞 자릿수를 바꿔가며 불과 4년 만에 재계 30위권 내에 진입했다(자산 기준). 카카오는 지난해 자산 총액 10조원을 넘기며 제조업이 아닌 IT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에 포함됐다.

카카오의 자회사는 무려 100여개에 달한다.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게임·택시·쇼핑·금융·연예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M&A를 통해 사세를 확장해온 덕분이다. 약점으로 지목받던 낮은 수익성과 해외 진출 문제도 최근 톡비즈와 픽코마가 성과를 내며 눈에 띄게 개선되는 모습이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지난 3월 카카오톡 서비스 10주년을 기념해 전달한 다음 메시지에는 그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읽힌다.

“카카오를 창업할 때 ‘대한민국에 없는 회사’를 만들어보겠다는 도전의식이 있었다. 그때 사람이나 시스템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일을 한다는 믿음을 갖고 영어 호칭, 모든 정보 공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같은 제도를 도입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될 수 있도록 많은 공을 들였다.”

네이버는 2017년 52위로 대기업 순위에 진입한 뒤 2018년 50위, 지난해 46위, 올해 41위로 순위가 계속 상승하고 있다. 매출과 시총 규모가 카카오보다 배 이상 큰데도 순위가 낮은 것은 해외 사업 비중이 높은 때문이다. 이해진 네이버 GIO(글로벌투자책임자)는 창업 후 네이버를 포털 1위로 안착시킨 뒤 해외 진출에 집중해왔다. 일례로 이해진 GIO는 1999년 네이버를 설립한 이듬해인 2000년 11월 네이버재팬을 설립하고 일본 진출을 시도했다. 이후 10여년간 사업 철수와 재진출을 반복한 끝에, 네이버의 100% 자회사이자 ‘일본 국민앱’인 ‘라인’이 대박을 터뜨리며 일약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네이버 성장사는 곧 한국 인터넷 산업 발전사다. 네이버는 1997년 3월 삼성SDS의 사내벤처로서 웹 검색 서비스를 개발하며 시작됐다. 1999년 6월 네이버주식회사로 독립하고 2000년 7월 한게임을 인수, 2002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이 시기에 선보인 ‘지식iN’ 서비스가 대박이 나며 네이버는 다른 포털과 차별화에 성공했다. 2005년 국내 검색 포털 1위에 오른 뒤 지금까지도 70%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지키고 있다.

넥슨, 넷마블 등 게임기업도 존재감을 뽐낸다. 넥슨은 56위 → 52위 → 47위 → 42위, 넷마블은 57위 → 57위 → 47위로 매년 상승세다.

먼저 넥슨. 김정주 NXC 대표는 카이스트 박사 과정 시절이던 1994년 아버지에게 6000만원을 빌려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넥슨을 창업했다. 1996년 세계 최초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으로 선보인 ‘바람의나라’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데 이어 ‘메이플스토리’(2003년), ‘카트라이더’(2004년), ‘던전앤파이터’(2005년), ‘피파온라인’(2006년) 등 내놓는 게임마다 성공시키며 자타 공인 국내 최고 게임업체로 우뚝 섰다.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부분 유료화(게임은 무료로 즐기되, 아이템은 유료로 구입하는 방식)’ 모델을 도입한 것도 넥슨이다. 현재 모바일 게임 대부분이 ‘인앱 결제’란 이름으로 채택하고 있는 부분 유료화 모델을 2000년대 초반 ‘퀴즈퀴즈’ ‘크레이지아케이드 비엔비’ ‘카트라이더’ 등에서 시도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벤처업계에서는 ‘기술 혁신’보다 적정 기술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더 주목받는다. ‘배달의민족’이 대표 사례지만, 그 원류를 따지면 넥슨이 그보다 10년이나 앞선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PC 게임 강자라면 넷마블은 단연 모바일 게임 최강자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이 지난 2000년 겨우 자본금 1억원, 직원 8명과 함께 창업한 후 혁신경영으로 국내 게임 시장 변화를 이끌었다. 2000년대 초반 게임업계 최초로 ‘온라인 게임 퍼블리싱’ 모델을 선보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는 PC방 사업과 가정용 PC 보급이 급성장하며 온라인 게임들이 우후죽순 출시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 방 의장은 안정적인 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데 고심, 업계 최초로 ‘온라인 게임 퍼블리싱’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했다. 지금은 게임 퍼블리싱 사업이 보편적이지만 당시만 해도 다른 회사 게임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상식을 깨는 행보였다. 이 같은 혁신에 힘입어 넷마블 게임 포털은 2002년 2월 회원 수 1000만명을 돌파하며 국내 대표 게임 포털로 자리 잡았다.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며 방 의장의 ‘모바일 게임 올인’ 전략도 제대로 적중했다. 2012년 ‘다함께 차차차’ 성공을 시작으로 ‘모두의마블’ ‘몬스터 길들이기’ ‘세븐나이츠’ ‘레이븐’ 등 굵직한 히트작을 쏟아냈다. 2017년 5월 코스피 상장 당시에는 IT업계를 통틀어 최고 수준 시가총액인 14조원을 기록했다. 이후 방 의장은 해외 시장 진출에 집중, 지난해 4분기 해외 매출 비중은 72%까지 높아졌다. 최근에는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실물 구독경제 1위 기업인 웅진코웨이를 인수,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유형2. 본업 앞세워 M&A로 ‘날개’

▶다각화 전문 SM, 식품 전력 하림·동원

“M&A는 속도경영에 있어 ‘시간을 사는’ 중요한 경쟁 전략이다.”

존 챔버스 시스코 의장이 M&A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존 의장은 시행착오 없이 회사 규모를 효율적으로 키울 수 있는 방법으로 인수합병을 주목했다.

국내 창업 1세대 기업 중에서도 M&A 전략을 활용해 급성장한 곳이 많다. 건설업을 바탕으로 사업을 다각화한 부영·SM, 식품·해운회사를 사들여 규모를 키운 하림과 동원, 그리고 동부제철 인수로 급성장한 KG가 대표 사례다.

부영그룹은 이중근 회장이 설립한 ‘삼진엔지니어링’이 모태다. 임대사업을 토대로 주택 시장에서 명성을 쌓으며 신흥 건설 강자로 떠올랐다. 본래 사업에서 내실을 다진 후 리조트·골프장 등을 사들이며 사세를 확장했다. 2011년 무주덕유산리조트를 인수한 데 이어 2016년 제주더클래식CC&리조트와 안성마에스트로CC를 매입했다. 꾸준히 사업을 성장시킨 결과 2002년 43위에 머물렀던 재계 순위는 2020년 17위까지 올랐다.

부영그룹이 주택 시장에서 입지를 다진 후 사업을 확장했다면, SM그룹은 처음부터 적극적인 M&A로 규모를 키운 사례다.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기업을 대거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2004년 진덕산업(현 우방산업) 인수를 시작으로, 건전지 제조업체 벡셀(2005년), 경남모직(2006년), 티케이케미칼(2008년) 등을 잇달아 사들였다. 2013년에는 대한해운을 합병해 해운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이어 경남기업(2017년)과 삼환기업(2018년)을 사들여 계열사로 편입, 오늘날 9조원대 자산과 53개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으로 성장했다. SM그룹의 공격적인 합병 전략은 우오현 SM그룹 회장의 평소 지론과 관련이 깊다.

우 회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회사를 새로 만들어 키우는 것보다 좋은 매물을 가려내 그룹 계열사로 편입시키며 더 많은 사업 기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며 자신의 경영철학을 밝혔다.

하림과 동원은 본업인 식품 관련 회사들을 인수하며 성장했다. 육가공 사업으로 내실을 다진 하림그룹은 사료회사인 천하제일사료(2001년), 선진(2007년), 동물용 의약품 제조회사 썸벧(2001년), 국내 최대 벌크선사 팬오션(2015년)을 차례로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육류 가공업과 시너지가 높은 기업들을 사들이며 ‘곡물·사료·축산·도축·가공·판매·유통’의 틀을 만들었다.

동원그룹은 공격적인 M&A 전략으로 그룹의 주요 사업군인 ‘수산·식품·포장재·물류’의 기틀을 닦았다. 특히 2008년 미국 최대 참치 캔 제조회사 ‘스타키스트’ 인수는 수산업 절대 강자로 올라서는 결정적 계기로 적용했다. 미국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던 스타키스트의 합류로 동원은 참치 어획량과 참치 가공부문 세계 1위에 등극했다. 올해 기준으로 동원그룹은 재계 서열 50위를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KG그룹은 올해 처음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포함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KG그룹은 자산 총액이 2조2337억원에 불과했다. 5조원 이상을 기준으로 하는 공시대상기업집단에 들어가기에는 규모가 작았다. 1년 만에 그룹 자산 총액을 두 배 가까이 불린 배경에는 지난해 인수한 ‘동부제철’ 영향이 컸다. 자산 규모가 2조원을 넘는 동부제철의 합류로 그룹 자산 총액은 5조2560억원까지 치솟았다. 동부제철 인수 전에도 KG그룹은 인수합병을 활발하게 추진하는 기업으로 유명했다. 택배사 옐로우캡, 전자상거래 기업 KG이니시스·KG모빌리언스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을 사들이며 성장했다.



유형3. 금융 창업 1세대 ‘약진’

▶샐러리맨 신화 박현주…미래에셋 19위

금융업계도 창업 1세대 기업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증권가에서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는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미래에셋그룹은 올해 공정위가 발표한 대규모 기업집단 자산 총액 순위 19위에 올랐다.

박 회장은 1986년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에 입사하자마자 뛰어난 영업 실적을 인정받아 45일 만에 대리로 초고속 승진한 전설적인 ‘증권맨’이다. 33세였던 1991년에는 당시 국내 최연소 지점장에 오른 것도 모자라 전국 주식약정 1위를 차지하며 업계 전체를 놀라게 했다. 고액 연봉과 승진 조건을 앞세운 다른 증권사들이 앞다퉈 스카우트 제의를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리고 1997년 6월 스스로 회사를 세운다. 미래에셋그룹의 모태인 미래창업투자(현 미래에셋캐피탈)다. 한 달 후에는 최현만 당시 동원증권 서초지점장(현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 등 ‘박현주 사단’이라고 불리는 8명과 함께 국내 최초 전문 자산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한다.

박 회장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국내 최초 뮤추얼 펀드 ‘박현주 1호’를 선보였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 판매 시작 후 단 3시간 만에 500억원어치가 모두 팔리는 기록적인 판매고와 함께 ‘연 90%’라는 놀라운 고수익을 기록하며 브랜드를 널리 알렸다. 이에 힘입어 1999년 미래에셋증권을, 2005년에는 미래에셋생명보험을 설립하며 투자 전문그룹으로 도약했다.

미래에셋그룹의 주요 성공 비결로는 적극적인 해외 시장 개척이 꼽힌다. 미래에셋운용은 국내 자산운용사로는 처음으로 홍콩에 해외법인을 설립한 뒤 인도, 미국, 브라질, 캐나다, 호주, 대만, 콜롬비아 등으로 영토를 넓혔다. 지난 5월 말 기준 전체 운용자산 174조원 중 해외에 투자하고 있는 자산만 83조원(47%)에 달할 정도로 공격적인 해외 투자에 나서고 있다.

다우키움이라는 국내 굴지의 금융그룹을 키워낸 김익래 회장 스토리는 박 회장과는 또 다르다. 박 회장이 뼛속까지 금융인이라면 김 회장은 1981년 한국 1호 벤처기업인 ‘큐닉스’를 설립한 벤처업계 대부다. 1986년 큐닉스 사원을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업체 ㈜다우기술을 창립했다. 이후 1992년 프로그램 개발 회사인 ‘다우데이타’를 설립하는 등 한동안 IT ‘한 우물’을 파왔다. 그러던 중 1996년 온라인 증권 거래 시스템 ‘웹트레이드’ 개발로 증권 시장과 인연을 맺은 것이 현재 금융그룹으로 발돋움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 회장은 2000년 키움닷컴증권 설립 후 본격적으로 금융업에 진출했다. 키움닷컴은 국내 최초로 지점 없이 100% 온라인으로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증권사다. 영업점이 없다는 장점을 활용해 저가 수수료 전략으로 고객을 끌어모았다. 지금까지도 키움증권은 국내에서 ‘개인투자자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증권업체’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키움증권 개인투자자 거래대금은 118조1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국내 주식시장 전체 개인 거래대금(390조원)의 30.3%에 육박한다.

다우키움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다우기술에서 비롯한 IT 경쟁력이 발판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향후 등장할 창업 1세대도 다우키움 사례를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업종을 불문하고 IT 역량이 향후 미래 기업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금융은 물론 다른 제조·서비스업 역시 IT를 활용해 얼마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인지, 또 얼마나 사업구조를 효율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생존에 직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형4. 미래 먹거리 제약·바이오

▶R&D로 성장한 ‘셀트리온과 아이들’

제약·바이오는 향후 창업 1세대 대기업을 잇따라 배출할 ‘금맥’으로 주목받는다. 대장주 셀트리온을 비롯해 씨젠, 휴온스 등 후보 기업이 수두룩하다.

2016년 재계 순위 59위(자산 기준)로 대기업집단에 처음 이름을 올린 셀트리온은 올해 자산 규모 8조8380억원으로 4년 만에 14계단 껑충 뛰어오르며 재계 45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1조1285억원, 3781억원에 달한다.

셀트리온은 서정진 회장이 지난 2000년 창립한 ‘넥솔’이 모태다. 대우그룹이 파산하자 당시 대우자동차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함께 맨몸으로 창업에 나섰다. 서정진 회장이 주목한 것은 고가 바이오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는 시점이었다. 특허가 만료되면 효능과 안전성은 같지만 가격은 저렴한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세계 최초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다. 램시마 이후에도 유방암·위암 치료제 ‘허쥬마’, 혈액암 치료제 ‘트룩시마’, 램시마의 피하주사 형태인 ‘램시마SC’까지 잇따라 선보이며 항체 바이오시밀러 분야의 선두주자로 자리를 굳혔다.

코로나19 수혜를 톡톡히 본 씨젠도 ‘제2의 셀트리온’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씨젠은 진단키트 개발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로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전 세계 약 60여개국에 수출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씨젠은 올해 1분기 매출만 817억7162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 197.6% 증가한 수치다.

씨젠의 급속도 성장 뒤에는 천종윤 씨젠 대표가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이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천 대표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라고 판단해 발 빠르게 진단시약 개발에 착수했다. 회사의 모든 역량을 총집중한 결과로 2주 만에 코로나19 진단키트 ‘올플렉스(Allplex 2019-nCoV Assay)’를 개발해냈다. 이후는 탄탄대로. 1월 말 질병관리본부에서 연락이 왔다. 씨젠은 2월 12일 긴급 사용승인을 받은 후 공급에 나설 수 있었다.

20년 전 씨젠을 설립한 천종윤 대표는 미국 테네시대에서 분자생물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하버드대와 UC버클리 등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이화여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삼촌(천경준 전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사장) 권유로 씨젠을 창업했다. 학자로서의 길을 걷던 그가 창업 후 ‘분자진단’ 분야에만 매달려온 데는 유년 시절 경험이 크다. 천 대표는 중학교 졸업 이후 발병한 결핵으로 5년간 투병생활을 했다. 건국대 농학과도 독학 검정고시로 진학했다. 창업을 결심한 이후에는 분자진단이라는 원천기술 확보에 몰두했다. 분자진단은 환자의 혈액, 객담, 소변 등 체외진단 방법으로 유전자를 검사해 질병을 파악하는 기법.

씨젠은 분자진단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으로 꼽힌다. 목표한 바이러스의 특정 유전자만 증폭시켜 질병 원인을 분석할 수 있는 멀티플렉스 유전자 증폭 시약과 분석 소프트웨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어 검사 정확도도 높다. 특히 3대 원천기술(DPO, TOCE, MuDT)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동시 다중 정량검사를 할 수 있는 기술력을 자랑한다.

시가총액으로 본 재계 서열은

네이버·카카오·셀트리온이 현대차 제쳐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대기업집단은 자산 총액으로 줄을 세운다. 그런데 상장된 기업의 주식가치를 평가하는 시가총액으로 기준을 바꾸면 재계 서열이 완전히 달라진다.

6월 29일 기준으로 1위 삼성전자, 2위 SK하이닉스, 3위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이어 NAVER, 셀트리온, LG화학, 삼성SDI, 카카오, 삼성물산, 현대차가 뒤를 이었다.

재밌는 건 현대차다. 현대차는 공정위 순위에서는 삼성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시가총액 순위로는 10위다.

반면 자산 순위로 각각 23위, 41위인 카카오와 네이버는 시가총액 순위에서는 현대차를 앞서며 8위와 4위로 순위가 역전돼 있다. 자산 규모와 별개로 투자자는 투자가치, 미래 비전에서 이들 IT기업을 더 후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말이다.

바이오, 게임업체도 같은 논리로 증시에서 상당히 높은 대접을 받는다.

특히 바이오 기업의 선방이 주목할 만하다. 시가총액 순위에서 셀트리온이 자산 순위와는 별개로 5위에 올라 높은 위상을 뽐냈다. 참고로 셀트리온의 자산 규모 기준 대기업 순위는 45위다.

자산 규모 순위 47위인 넷마블과 42위인 넥슨 역시 시가총액 순위에서는 훨씬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넷마블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30위권을 기록했다.

매경이코노미 분석 결과, 시가총액 종목을 그룹사별로 묶어봤을 때도 결과는 흥미로웠다. 삼성그룹은 자산 규모와 시가총액 모두 1위 자리를 유지했지만 2위부터는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자산 규모로는 2위 자리를 차지한 현대차그룹은 시가총액 순위에서는 4위로 밀려났다. 자산 규모 3위, 4위에 각각 머무른 SK그룹과 LG그룹은 한 계단씩 상승해 시가총액 순위에서는 2위와 3위 자리를 차지했다.

자산 규모로는 10위권에 들지 못한 기업들이 시가총액 순위 10위권에 든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셀트리온(5위), 네이버(6위), 카카오(7위), CJ(9위)가 순위권을 차지하며 전통 대기업 그룹을 밀어냈다.

[노승욱·나건웅·반진욱·박지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66호 (2020.07.08~07.14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