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업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

벤처투자 양적 확대에도 스케일업 금융 여전히 부족

2020-04-08 10:50:56 게재

50억원 이상 벤처투자 건수는 전체의 1.3% 그쳐 … 5년 생존률 27%, 천억벤처 중 고성장기업은 4.8% 불과

세계는 저성장과 실업난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성장률을 회복하지 못하고 고용없는 성장이 장기간 지속된 탓이다. 최근엔 코로나19의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 현상으로 세계경제 불확실성이 커졌다.

한국경제도 풍전등화 위기에 놓였다. 한국의 경제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이 2000년대 이후 동반 하락하고 있다. 인구고령화, 신흥개도국의 추격, 새로운 성장동력 미비 등은 한국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소재·부품·장비 '강소기업 100 전담지원단' 본격 가동 6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소재·부품·장비 강소기업 100'을 밀착지원하기 위해 '강소기업 100 전담지원단'이 발대식을 가졌다. 지원단은 중소벤처기업부와 7개 유관기관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각각 보유하고 있는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 유기적으로 강소기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사진 중소벤처기업부 제공


저성장 기조와 실업난 극복을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세계 경제강국들은 '스케일업'(scale-up)에서 길을 찾았다.

스케일업은 사전적으로 '규모 확대'를 의미한다. 기술 제품 서비스 생산 등의 규모 확대를 설명할 때 주로 쓰인다. 최근에는 용어의 의미를 확장해 고성장기업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된다. 고성장기업은 고용인력이 10명 이상이면서 매출 또는 고용이 3년 연속 평균 20% 이상 성장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벤처기업의 '스케일업'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세계 각국에서 주요 정책과제로 떠올랐다. 스케일업 기업들이 국가경제의 혁신역량, 생산성, 일자리 창출 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경제강국은 스케일업 정책에 집중 = 카우프만재단은 5%의 고성장기업이 신규 일자리의 2/3를 창출한다는 보고서(2010년)를 내놓았다. 중소기업청 조사(2014년)에서도 9.8%의 고성장기업이 신규 일자리의 33.4%를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들의 정책지원이 '스타트업'에서 '스케일업'으로 옮겨가는 배경이다.

2014년 7월 미국 중소기업청(SBA)은 "92%의 새로운 일자리는 기존 기업의 확장에서 창출된다"며 스케일업 정책의 도입배경을 설명했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스케일업 육성 전담기관을 2014년 설립했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2016년 제도 완화, 자금 접근성 제고 등 스케일업을 위한 생태계 개선 계획을 수립했다. 2018년 4월에는 유럽투자기금(EIF)과 투자 활성화를 위한 벤처 EU프로그램을 추진했다.

국내에서도 스케일업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은 "벤처기업의 스케일업이 벤처 생태계를 넘어 우리나라 경제의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성장·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신 벤처기업군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잘 성장하도록 하는 스케일업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논리다.

국내 창업기업 5년 생존율은 27%이다. 프랑스(44.3%), 영국(41.1%) 등보다 현저히 낮다. 창업은 양적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나, 창업기업이 규모를 키우지 못한 채로 남아있거나 소멸하는 비율이 높은 것이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 따르면 한국 전체 스타트업 중 고성장기업 비중(2016년)은 6.5%다. 2010년 13.4%에서 대폭 하락했다. 영국(12.9%), 이스라엘(11.4%)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제조업 부문 고성장기업은 같은 기간 7372개(제조업 비중 12.2%)에서 6064개(7.9%)로 줄었다.

국내 벤처생태계에서 허리를 담당하는 천억벤처(매출 1000억원 이상)는 2018년 기준으로 전체 벤처기업 중 1.63%에 불과하다. 천억벤처 가운데에서 매출성장률이 20% 이상인 고성장기업(가젤기업)은 4.8% 수준이다.

초기 스타트업에서 천억벤처까지 스케일업 성장사다리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고성장기업 비중 갈수록 하락 = 스케일업 촉진을 위해서는 규제개혁, 회수시장 활성화, 차등의결권 등 생태계 기반 구축 등이 필요하다. 이 중에서 무엇보다 자금공급은 필수적이다.

불확실성이 높은 스타트업 특성상 투자자의 지속적인 자금공급만이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생태계를 유지시켜 준다.

우리나라 벤처투자 규모는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4조원을 넘어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다. 하지만 벤처투자가 창업 초기에 쏠려 있다. 투자액도 적다. 2018년 기준 기업당 투자액은 25억원이다. 50억원 이상 투자건수는 전체의 1.3%에 불과하다.

미국과 비교해 볼 때 건당 평균 벤처투자 규모는 2013년 1/3 수준에서 2018년 1/6로 커졌다, 벤처펀드 평균 규모도 1/3 수준에서 1/7로 시간이 갈수록 격차는 확대되고 있다.

스케일업 금융 확대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기업들의 스케일업 금융에 대한 관심도 높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지난해 5월 제1차 스케일업 금융 참여기업을 모집한 결과, 248개사가 약 1조4000억원을 신청했다,

최근에는 벤처대출(Venture Debt) 도입 필요성도 나오고 있다. 벤처대출은 벤처캐피탈로부터 지분투자를 받은 벤처기업에게 제공되는 모든 형태의 대출을 의미한다.

실례로 스케일업이 활발한 미국에서는 다수의 벤처기업이 성장단계별 지분투자와 더불어 벤처대출을 받고 있다. 다우존스 벤처소스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28%의 벤처기업이 벤처대출을 받았다.

중소기업연구원 홍종수 부연구위원은 지난 5월 발표한 '스케일업 촉진을 위한 벤처대출 도입방안'에서 "미국의 경우 벤처대출 제공 금융기관과 벤처캐피탈이 오랜기간에 걸친 협업을 바탕으로 신뢰를 구축해 벤처대출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금융기관과 벤처캐피탈의 협업 축적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김형수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