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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수입몰 `발란`은 어떻게 100억원을 투자 유치했을까

박수호 기자
입력 : 
2020-01-21 15:25:02
수정 : 
2020-01-21 15: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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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인사이드-196] 해외 명품 온라인 쇼핑 플랫폼 '발란'이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마무리했다고 밝혔습니다. e커머스 시장이 격전지인 데다 병행수입이 워낙 발달한 한국에서 명품 수입 분야로 거금을 유치했다니요? 어떤 업체인지 궁금했습니다. 게다가 이번 투자에 참여한 곳이 메가인베스트먼트, SBI인베스트먼트, 위벤처스, 큐캐피탈파트너스, 코오롱인베스트먼트 등 벤처 분야에서 이름 있는 곳들인데요. 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투자했는지도 의문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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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록 발란 대표
그래서 관련 인사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봤습니다. 우선 창업자부터. 최형록 대표였는데요. 2015년 발란을 설립했다는군요. 그는 2015년 공군 회계장교 전역 후 MBA를 갈지, 창업을 고민했답니다. 그러다 평소에 좋아하던 '명품 소비'에서 기회가 있다고 봤답니다.

"대학생 때부터 돈을 모아 명품을 샀는데요. 백화점에서 명품을 사면 원하는 아이템을 한 곳에 모아서 볼 수 없잖아요? 각 브랜드별 매장을 다 들어가봐야 하고요. 쇼핑하기도 불편하고 값도 너무 비쌌어요."

그래서 그는 명품을 해외 직구하거나 유럽에 가서 직접 사오기 시작했답니다. 유럽의 편집숍에서 명품을 구매하면서 이 과정을 '이커머스로 풀어낼 수 없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는데요.

"명품은 세계 공용으로 통하는 상품이라 정품을 저렴하게 공급할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팔 수 있고 홍보도 필요없잖아요? 다만 유통경로가 너무 많아 불편하고 그래서 개선할 수만 있다면 기회도 크죠. 아마존에서 처음 책으로 사업을 시작한 건 책이 유통하기 좋은 재화라서였잖아요? 규격도 대략 일정하고 ISBN(도서번호)으로 일괄적으로 검색도 가능하죠. 명품도 똑같아요. 브랜드가 생산하는 재화마다 SKU(제품 계정) 코드가 발급되거든요. 명품 공급유통망 중 한 곳을 공략해 가격을 낮게 받아오면서 상품 데이터베이스만 일원화해서 아시아 시장에 팔면 너무 좋겠다 싶었죠."

그렇게 '발란' 창업으로 이어졌답니다.

참고로 발란이란 사명을 지은 사연도 재밌는데요. '난리'를 평정하다는 뜻이랍니다. 이 단어는 사실 최 대표의 공동창업자가 꿈에 응접실에서 VIP 손님들을 모시고 있는데 응접실 뒤에 'BALAAN'이라고 써져 있어 그걸 그대로 가져왔다고 합니다. (공동창업자 분은 발란이 대박난다면 작명소를 하나 차리셔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웃음))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올게요.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기자는 이전에도 많은 병행수입 업체를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업체마다 비슷한 논리를 폈습니다.

'아시아 명품 시장이 정말 크다. 전체 규모는 약 100조원이다. 한국도 약 14조원 규모의 시장이 있다.'

이 중 서울이 11조원가량을 차지한다. 세계 8위의 시장이다. 그러니 해볼 만하다'와 같은 전개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 회사들은 좀 가다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일단 원가를 낮추려면 본사 혹은 현지 유력 유통사(일명 부티크)와 직접 거래해야 합니다. 참고로 부티크들은 350조원 세계 명품 패션 시장 유통의 60%를 차지한답니다. 그러려면 바잉 파워(구매력)가 뒷받침돼야 하지요. 그런데 신생 스타트업이 그렇게 하긴 쉽지 않습니다. 자본력이 그만큼 있어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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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란 사업초기 해외부티크확보를 위해 장거리 현지출장
더불어 시장 흐름도 봐야 합니다. 유행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또 소위 지디로 대변되는 힙스터, 패션리더들도 지난달에는 이 명품 브랜드 입었다가, 이달에는 다른 명품 브랜드를 착용하고 돌아다닙니다. 그러면 유행이 거짓말 같이 한 달, 아니 일주일 단위로 또 금방 바뀝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일주일에 한 번 신상품을 내는 드롭 방식의 출시 전략이 유행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예전 시스템대로라면 사실 어려움이 많습니다. 대량구매를 해야 하니 최소 8개월 전에 히트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아이템을 대량 주문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국내 시장에 선보일 즈음에는 유행이 이미 지나가 버려 망한 회사들이 많았어요. 해외 직구 사이트를 통해 바로바로 사는 똑똑한 소비자도 늘었고요.

바로 이 취약점을 '발란'은 어느 정도 해결했다고 합니다.

최 대표는 이를 'B2C(기업 대 고객) 고객 클러스터링을 통한 맞춤 상품 추천'이라고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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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란 창업 초기 앱을 어떻게하면 편하게 쉽게 쓸 수 있을 지 회의 중
"지금까지 병행수입 사업자들이 해외 직구 등 대형 사업자에게 밀린 이유는 한정된 예산과 빈약한 고객 데이터, 부티크와의 직접 연결 미진 등으로 마진 확보가 불가했기 때문에 보수적인 주문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희는 바로 이 부분을 치고 들어갔어요. 일단 빅데이터 기반 마케팅으로 차별화했습니다. 빅데이터를 내가 가지려면 쇼핑 앱을 만들어야 해서 직접 개발, 전개까지 모두 내재화했습니다. 스타트업이지만 개발팀 인력만 20명에 육박하는 것도 이런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앱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디지털 마케팅에 집중했답니다. 나이대, 성별, 선호하는 브랜드, 더 자세히는 어떤 아이템을 위시리스트와 장바구니에 넣는지를 '발란' 쇼핑 앱을 통해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소비자 행동 패턴에 맞춰 그에 맞는 상품들을 추천하면서 마케팅에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는데요.

그 결과 플랫폼 론칭 3년간 6000여 개 명품 브랜드, 약 70만개 상품을 선보였고 월거래액은 최근 60억원을 넘겼습니다. 지난해 초만 해도 월 10억원 미만이었던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죠.

더불어 구매력(바잉파워)을 더 확대하기 위해 국내 병행수입상, 명품소매업체들을 고객사로 끌어들였답니다.

"꼭 발란 쇼핑몰에서 사지 않더라도 인기 있는 트렌드 제품이 국내에 있어 해외배송 없이 고객이 더 빨리 받아볼 수 있는 다양한 루트를 개발해놓으면 고객사도 좋고 발란에게도 큰 경쟁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그간 못 가졌던 빅데이터를 주간 단위로 보고서 형태로 보내고 다음 시즌 구매 추천, 그리고 중간 에이전트 없이 부티크와의 직접 사전 주문(프리오더) 중개까지 대행해주고 있답니다."

여기까지는 국내 판매 생태계 구축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 양질의 명품을 다량 확보할 수 있느냐'입니다. 이렇게 해야 원가 경쟁력이 생기니까요. 이를 위해서는 해외 거래처 그중에서도 대형 부티크를 확보해야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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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출장 일정. 열흘간 4000km를 이동하는 살인적인 출장 일정을 소화한 끝에 발란은 현재 6000여개 브랜드, 70만개 상품을 판매하는 쇼핑몰로 성장했다.
발란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일단 무작정 만나자'와 'IT 고도화'였습니다. 2016년 사업 초기 발란은 미국, 유럽 명품 부티크들에게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거나 직접 발품을 팔아 만났습니다. 한 번 해외 출장 일정을 잡으면 하루에 서너 팀과 미팅, 이동거리만 4000km가 넘을 정도로 강행군을 벌였지요.

"한 거래처를 뚫으면 거기다 얘기해서 다른 대형 거래처를 소개해 달라고 했어요."

기자 생각에는 그러려면 사실 소개받은 곳에도 일종의 거래할 이유 혹은 이점이 있어야 하는데요. 최 대표는 어떻게 설득했을까요. 해외 대형 유통업체도 고민은 있었습니다. 바로 IT시스템이 취약하다는 고민입니다.

"꽤 큰 업체도 지금까지는 새로운 거래처가 생기면 처음에는 수기로 프로세스(상품 등록·발주 ·배송·반품·교환)를 진행하더군요. 인건비나 IT구축 비용이 비싼 유럽 특성 상 이름 모를 업체가 나타나 대신 물건 팔아주겠다고 해서 이 업체만을 위해 일일이 상품등록하고, 운영 인력을 배치하는 게 부담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때 저희는 'LUXURY HUB'라고 해서 직접 만든 ERP(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으로 이를 대체해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플랫폼을 시연하니 감탄을 금치 못했어요. 곧바로 계약하자고 하는 곳이 늘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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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란 2019년 주요 실적지표
발란은 이들과 실시간 상품·재고 연동 API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급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명품은 신상 입고 속도가 국내 백화점 대비 2~3개월 빠를 정도로 자리가 잡혔습니다. 사용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주는 플랫폼으로 인지되고 있다 보니, 주요 글로벌 럭셔리 플랫폼도 발란과 이제는 파트너십을 원할 정도입니다. LVMH가 운영하는 24s닷컴, Matchesfashion, Yoox 등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지미추, 톰브라운, 디스퀘어드 등 브랜드들도 직영으로 발란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지요.

"이 쟁쟁한 파트너들이 발란과 경쟁보다 파트너십을 맺는 이유는 그들이 직접 한국 고객에게 직접 파는 것보다 비용과 편의성 면에서 압도적으로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럭셔리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시시각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유럽 컨템포러리 디자이너 들과 빠르게 소통하고 즉각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채널을 구축하면서 '스피드 경영'을 시현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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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란은 어떻게 돈을 벌까요? 쉽게 말해 '고객 판매가 - 도매 공급가'에서 플러스가 나면 되는데요. 최근 거래액이 늘어나면서 더 좋은 가격으로 공급을 받고 객단가 대비 운영비(해외 배송비 등) 효율화가 가능해지다 보니 지난해 9월부터는 월단위 흑자가 나기 시작했답니다.

이런 성장세에 투자사도 마음을 연 듯합니다.

"2년 전쯤 들여다본 럭셔리 시장은 많이 변해 있었다. 생로랑, 샤넬 등의 기존 브랜드 외에 메종 마르지엘라 같은 비교적 새롭고 특징 있는 브랜드들이 뜨고 있었다. 구찌 같은 오래된 브랜드들은 리브랜딩을 통해 스트리트 패션 감성을 녹인 제품을 출시하고 있었다. 골든구스, 베트멍 등의 하이엔드 스트리트 브랜드가 추구하는 스타일이 새로운 변화하는 명품 시장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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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란창업초기 해외부티크업체에 협력제안을 했는데 긍정적인 답변이 와 놀라던 모습.
베인앤드컴퍼니에서 나온 시장조사 결과를 보니 Y세대와 Z세대가 전체 럭셔리 소비자의 47%를 차지하고 구매의 33%를 차지한다고 했다. 전 세계 럭셔리 시장 규모가 약 350조원 규모니 밀레니얼 세대가 차지하는 규모가 12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럭셔리 시장은 기존 중·노년층의 탄탄한 구매력이 뒷받침되는 가운데 밀레니얼 세대들의 취향 기반 소비 트렌드로 인해 젊은 층이 놀랍도록 빠르게 유입되는 흥미로운 시장이 되어 있었다. "이렇듯 변화하는 럭셔리 시장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낼 것 같은 플레이어로 발란이 눈에 띄었다. 사업 분야도 마음에 들었지만, 경영진이 투명하고 신뢰도 있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주신 것도 투자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발란에는 다 있어!'라는 고객 인식이 점차 잡혀가는 점도 의미 있고 해외 유통 채널, 브랜드와의 직접 협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성장하는 럭셔리 시장에서 발란이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보영 코오롱 인베스트먼트 팀장, 황규진 SBI인베스트먼트 팀장의 총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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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란에 투자한 황규진 SBI인베스트먼트 팀장(맨왼쪽), 김보영 코오롱인베스트먼트 팀장(가운데).
앞으로 발란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발란은 고객들이 가장 편리하게 럭셔리 쇼핑을 할 수 있는 플랫폼임을 더 각인시킬 겁니다. 강력한 사용자 경험 개선을 통해, 고객과의 관계가 가장 강력한 플랫폼을 만들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용자들은 그 플랫폼으로 모이게 되고, 공급자는 해당 플랫폼과의 협업을 추구하게 만들 겁니다. 그간 해외 판매 채널의 문제 였던 개인통관고유번호, 배송, 반품교환, CS(고객 서비스) 걱정없이 구매할 수 있는 버티컬 플랫폼도 구축했어요. 들어온 투자금으로 A급 인재들이 발란에 들어와서 시장 혁신을 더 빠르게 주도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이를 통해 자체 클라우드 기반 ERP 시스템 고도화해 60만개의 다양한 공급망의 상품 등록·고객 주문 시 발주·배송· 반품·교환 등을 자동화하려 합니다. 더불어 데이터 기반의 콘텐츠 확장을 할 것이다. 이미 고객들이 어떤 브랜드 ·상품에 대해 관심 있고 궁금해하는지 알게 된 만큼 다양하고 재밌는 방식으로 고객들에게 전문화된 콘텐츠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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