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취해야 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가장 쉬운 방법은 글로벌 제약사 수준으로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단기간에는 불가능하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고도화된 의료 인프라스트럭처, 우수한 의료·임상 관련 인력, 대도시 밀집 인구 등을 바탕으로 지난해 서울은 전 세계에서 임상시험을 가장 많이 수행한 도시로 꼽혔다. 이렇게 훌륭한 임상 인프라 위에 한국의 뛰어난 정보기술(IT) 활용 능력을 결합해보는 것은 어떨까.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 허가 신청이 통과되지 못하는 원인 중 50%는 임상시험의 데이터 품질 문제라고 한다. 데이터 품질 저하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임상데이터 관리다. 수많은 임상 참여자를 대상으로 수년간 데이터를 입력하고 관리하다 보면 사람 실수로 인한 의도치 않은 데이터 오류(human error)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결국 데이터 품질 저하로 이어져 국내 제약사가 목표로 하는 글로벌 신약 승인이나 신약 라이선스 수출 계약의 문턱에서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데이터 품질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머신러닝 등 데이터 관련 기술을 이용한다면 효율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 임상 비용을 낮추고, 임상에 소요되는 기간을 단축시키는 부가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국내 선도 제약사나 바이오 벤처들이 이 같은 데이터 품질 관리 솔루션을 도입하고 관리 체계 구축을 시도하고 있는데, 국내 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고무적인 움직임이라 할 만하다.
IT와 신약 개발을 결합했을 때 또 다른 기대효과를 보자. 현재 글로벌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각광받는 분야는 희귀 의약품과 항암제다. 일반적으로 임상시험은 신약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환자를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구분해 진행한다. 그런데 희귀 질환은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환자 모집에 어려움이 있으며, 암은 소아암이나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을 때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를 간과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AI, 빅데이터 등 데이터 관련 기술을 활용해 희귀 의약품과 항암제 개발에도 효율적인 대조군 실험이 가능해졌고, 비용 역시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됐다. 오늘날 제약·바이오 업계 화두는 신약 개발 데이터의 품질 향상과 효율화를 꾀하는 AI, 빅데이터 등 기술 활용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글로벌 제약사 수준의 천문학적 투자를 하는 것은 단기간에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이 강점을 가진 IT를 적극 활용한 스마트한 임상시험으로 'K바이오'가 글로벌 신약 경쟁에서 큰 성과를 거두길 기대해본다.
[임우성 메디데이터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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