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쏟아지는 대형 M&A 딜, 다음 타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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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3.12. 오후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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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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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2019 M&A 대예측]
CJ헬로·대우조선 이어 넥슨까지…‘새로운 길목’ 선점 경쟁, 국경 넘는 크로스보더 인수 ‘대세’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우선 건수가 늘었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된 기업의 M&A 건수는 702건으로 2007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많았다. 건수보다 주목되는 것은 M&A 규모다. 연초 이후 초대형 M&A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같은 빅딜이 성사된 데 이어 10조원 넥슨이 매물로 나온 상황이다.

최근 M&A 시장의 특징은 조 단위의 굵직한 거래가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 두산이 4조5000억원에 밥캣을 인수한 이후 한동안 수조원의 대형 거래가 눈에 띄지 않았었다. 지난해 5월 SK의 도시바 인수(20조원)로 전체 M&A 거래 규모가 수직 상승했다. 올해는 1분기부터 빅딜이 잇따르며 역대급 한 해를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 또한 가열되고 있다. M&A의 큰손인 사모펀드(PEF)가 여전히 건재한 가운데 과거 M&A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 왔던 대기업들도 팔을 걷어붙이는 상황이다. 지난 1월 롯데카드 입찰에 10여 곳이 참여해 열기를 더했다.

사는 것뿐만 아니라 파는 결단도 과감해졌다. CJ제일제당은 사료사업부를 M&A 매물로 내놓았다. 핵심과 비핵심을 가르는 사업 재편의 수단으로 기업들이 M&A 카드를 적극적으로 꺼내들고 있다.

‘그린 필드 투자’에서 ‘브라운 필드 투자’로
최근 M&A 시장이 달아오르는 배경에는 급변하는 기업 환경이 자리한다. 불확실한 경기 전망에 이제는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으로 M&A에 눈을 돌리고 있다. 과거와 같이 한 기업이 다양한 산업을 모두 수행해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때로는 과감한 매각을 통해 비효율을 줄이고 경쟁사와의 통합을 통해 힘을 공유하는 경영전략을 펼치고 있다.

글로벌 추세에도 부합한다. M&A를 통해 기업의 혁신 역량을 획득하는 추세다. 공장과 사업장을 직접 짓던 ‘그린 필드 투자’에서 우량한 기업과 생산 시설을 인수하는 ‘브라운 필드 투자’로 기업 투자의 축이 옮겨 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연수 NH투자증권 투자금융본부장은 “거시적으로 볼 때 경제성장률과 금리가 높을 때는 신규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었지만 시장이 성숙 단계에 이르면 이미 만들어진 기존의 기술과 제품을 사고파는 게 산업 전략 상 쉽고 유리하다”며 “미국과 한국 모두 과거 20년의 데이터를 보면 M&A 건수와 액수는 경제성장률·금리와 역방향으로 흐른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M&A 성공 경험을 축적하면서 기업들도 자신감을 키웠다. 사모펀드 등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으로 자금 조달이 용이해진 측면도 있다. 또한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올라온 한국 M&A 시장도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외환위기 당시 위기에 빠진 기업들이 예금보험공사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자산을 팔면서 국내 M&A 시장이 형성됐다면 재무적 투자자(FI), 대기업, 자문사·컨설팅 등 이해관계인이 얼개를 이루면서 투자은행(IB)이 자본시장의 한 축으로 부상했다.

1999년부터 골드만삭스 서울지점과 홍콩사무소에서 20년간 M&A와 주식 발행 업무를 담당해 온 정형진 한국 골드만삭스 기업금융 부문 대표는 “한국의 M&A 시장은 일본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며 “기업 경영에서 의사결정 구조나 주주 구성이 강화됨에 따라 자본시장 또한 선진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날로 활발해지는 M&A의 트렌드는 동기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왜 기업들이 M&A를 필요로 하는지’의 관점에서 ‘핵심 사업 확장과 해외 진출(크로스보더)’, ‘신성장 동력 발굴’, ‘비핵심 사업 정리’, ‘업계 구조조정과 재편’, ‘규제 환경 변화’ 등으로 유형이 나뉜다.

1 통합(consolidation)의 시대, 업종별 구조조정 일어난다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10년 가까이 M&A 시장의 토픽 중 하나는 ‘디스트레스딜(일시적인 이유로 저평가된 매물)’이었다.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거나 채권단 관리하에서 다시 민영화되며 매물로 나오는 케이스가 많았다. 대한전선과 대우건설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디스트레스딜이 지난 3년에 걸쳐 상당수 소진돼 왔다. 그리고 올해 초 대우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에 인수되면서 상징적인 기록을 남겼다.

한국의 조선업이 불황에 빠진 가운데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의 딜 성사는 산업 통합(consolidation)의 의미를 가진다. 조선업이 빅3에서 빅2 체제로 재편된다. 조선업뿐만 아니라 포화 상태에 이른 한국의 많은 산업 부문에서 이와 같은 업계 구조조정과 재편의 필요성을 가진다. 시멘트산업·해운업·유선방송업 쪽에서도 M&A가 활발했다.

김이동 삼정KPMG 전무는 “특히 자동차 부품, 중공업, 커머더티 케미컬, 제지 등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 기업 간 통합과 효율화가 필요하다”며 “올해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통합과 효율화를 고민하고 실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SK와 삼양사가 화학섬유 분야를 분사해 휴비스로 통합한 바 있다.

2 성장 전략의 변화, 선택과 집중이 살길이다
기업에도 성장 전략의 큰 변화가 엿보인다. 과거 문어발식 성장 전략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핵심에 집중하고 비핵심은 매각하는 기조다. 삼성그룹이 화학 사업을, 롯데그룹이 금융업을, LS그룹이 자동차 부품업을, 현대중공업그룹이 증권 사업을 매각한 것은 이와 같은 배경에서 비롯됐다. 최근 일어나는 M&A의 많은 경우 이와 같은 선택과 집중 전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 비핵심 자회사를 매각한 사례로는 LS오토모티브와 동박·박막 사업부 매각, CJ헬스케어 매각 등을 꼽을 수 있다. LS엠트론은 동박·박막 사업(배터리 소재)과 오토모티브(자동차 전장 부품)를 사모펀드 KKR에 양도하고 트랙터 부문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정비하고 있다. 또 CJ제일제당은 지난해 CJ헬스케어를 한국콜마에 1조3000억원에 매각한 데 이어 최근 사료사업부(1조원 이상)도 매물로 내놓았다. 식품·바이오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LG그룹은 앞서 2017년 1월 LG실트론(현 SK실트론)을 SK그룹에 매각한 바 있다. 그룹이 반도체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인 실트론을 팔았다. 반대로 SK그룹은 반도체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실트론을 품에 안았다. 기업들 스스로 포커싱을 통해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기업들이 한계 사업을 과감하게 매각하는 것은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풍경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영속적인 ‘가업’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경제적인 ‘효익’에 따라 사업을 재편하는 3·4세 경영진의 선택이 주목된다.

3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행보
선택과 집중 전략은 궁극적으로 미래의 먹을거리,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서다. SK텔레콤의 ADT캡스 인수, 삼성의 하만 인수, LG의 ZKW 인수, 현대백화점의 한화L&C 인수, 신세계의 까사미아 인수 등이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행보로 분류된다.

SK텔레콤은 지난해 10월 보안 사업 업체 ADT캡스(3조원)를 인수하는 빅딜을 추진했다. 사물인터넷(IoT)과 플랫폼을 활용하기 위한 핵심 경쟁력 확보 차원이었다. LG는 오스트리아 차량용 헤드램프 제조사 ZKW를 인수(1조4460억원)하기 위해 3년여의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 부품 사업 역량 강화와 글로벌 해외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업체를 선택했다. 삼성의 하만 인수도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크로스보더(국경 간 거래)였다.

4 대세는 크로스보더, 올해도 확대 전망
최근 아웃바운드를 비롯한 크로스보더 거래가 늘고 있는 배경에는 신성장 동력을 견인하는 대상 기업을 국내에서 찾는 데 한계를 느끼면서다. 특히 LG의 ZKW 인수, 삼성의 하만 인수 등은 핵심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중요한 딜로 평가된다.

또한 네이버와 미래에셋그룹이 동남아시아의 승차공유 업체 그랩에 투자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략적 투자자(SI)와 재무적 투자자(FI)가 협력해 투자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영권 확보에 집착하지 않고 소수 지분 투자를 한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밖에 KCC는 2011년 영국 실리콘 기업 바실돈을 인수한 이후 지난해 7년 만에 아웃바운드 시장에 나섰다. KCC컨소시엄의 미국 모멘티브 인수(3조4000억원)는 최근 크로스보더 사례 중 삼성의 하만 인수 다음으로 큰 규모에 해당한다. 또한 CJ제일제당의 슈완스 등 해외 식품 업체 인수, SK그룹의 엠팩 인수 등이 대표적인 크로스보더 사례에 해당한다.

M&A 전문가들은 올 한 해 국경 간 거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상수 삼일회계법인 본부장은 “증가하고 있는 크로스보더 M&A 가운데 특히 인바운드보다 아웃바운드의 증가가 눈에 띄고 실제 고객들로부터 아웃바운드 M&A 문의를 받고 있다”며 “국내 경기가 둔화되고 기술 경쟁력 등의 새로운 성장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크로스보더 M&A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유럽이나 미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도 국내 기업들이 관심을 갖는 시장이다. 특히 금융사들은 동남아 진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5 일감 몰아주기 등 규제 이슈도 중요
최근 정부 규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매각에 나서는 M&A 수요도 적지 않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로 사내 매출이 많은 계열사를 합병하거나 별도로 매각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20%를 넘는 비상장사는 내부 거래 비율이 12% 이상(연매출 기준)이면 정부 규제를 받는다.

최근 일어난 거래 중 한화S&C와 LG서브원의 딜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5월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따라 오너 일가가 보유하고 있던 옛 한화S&C를 분할한 뒤 사모펀드 운용사 스틱인베스트먼트에 매각한 바 있다. LG그룹은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업체인 계열사 서브원을 매각했다. LG는 총수 일가가 보유한 판토스 지분을 처분하는 등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밖에 SK의 해운 부문 매각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김이동 삼정KPMG 전무는 “대주주 개인이 일정 지분 이상을 보유한 그룹 계열사는 올해도 지속적인 매각 필요성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며 “SI(IT 서비스)·물류·MRO·단순임가공 계열사가 그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모펀드와 기업의 합종연횡도 주목받는 트렌드다. 신세계·이마트의 온라인 사업 분사 후 어피니티컨소시엄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것과 같이 기업의 성장 동력 사업부에 PE의 자금이 수혈되고 있는 상황이다. 투썸플레이스는 분사 후 앵커 투자를 유치했고 11번가 또한 분사 후 H&Q 투자를 이끌었다.

그렇다면 올해 가장 주목되는 딜은 무엇일까. 유상수 삼일회계법인 본부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방송통신 분야에 대한 재편이 가장 기대되는 분야”라며 “LG유플러스가 CJ 헬로비전을 인수하고 SK가 티브로드를 합병한 데 이어 유료방송업계 시장의 재편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올해는 유료방송업계에서 크고 작은 M&A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PEF 포트폴리오도 주목해 볼만한 체크 포인트다. PEF는 통상 5~8년의 라이프사이클을 갖는다. 그리고 펀드 만기가 돌아오는 매물들이 올해 대거 시장에 풀릴 예정이다. 남상욱 딜로이트안진 M&A그룹 전무는 “지오영·메타넷·할리스·태림포장·대한전선·모나리자·쌍용제지·잡코리아 등 빈티지가 오래된 PE 포트폴리오 회사들의 매각이 본격화될 예정”이라며 “특히 전략적 투자자와 재무적 투자자와의 협업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종별로 보면 전통적인 소비재, 제조업에서 온라인·O2O 사업, 미디어 커머스, 콘텐츠 사업 등 다양한 산업군으로 PE들의 관심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charis@hankyung.com

[커버스토리=2019 M&A 대예측 기사 인덱스]
-연초부터 쏟아지는 대형 M&A 딜, 다음 타깃은?
-5대 그룹 10년간 M&A분석... 어떤 기업 사고 팔았나
-"효율 따지는 오너 2·3세, 비핵심 사업 과감한 매각... 전장·화학, 초대형 해외 딜 이어질 것"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5호(2019.03.11 ~ 2019.03.1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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