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엑스레이 튜브 제조 스타트업인 어썸레이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스타트업이다. 메탄 등에서 탄소나노튜브 섬유를 뽑아내는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어썸레이는 이 기술로 초소형 엑스레이 튜브를 제조했다. 막 나온 뜨거운 철강의 두께 등을 재는 데 사용한다. 일반 장비는 열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런 장비는 대부분 일본산을 사용했다.
 그래픽=이은현 기자
그래픽=이은현 기자

○소부장은 산업 경쟁력의 핵심

국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 중 하나는 소부장이다. 제조업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지만 소부장 분야에선 해외 제품 의존도가 높다. 관련 원천 기술이 부족해서다. 하지만 최근 어썸레이 같은 토종 스타트업이 기술 개발에 나서면서 국내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이 커지고 있다.

2017년 설립된 헬스케어 소재 전문 스타트업 그래피는 치과용 3차원(3D) 프린팅 모델·보철·교정 장치 및 관련 소재를 국산화했다. 그동안 이 같은 제품은 대부분 미국 독일 네덜란드 중국 등에서 수입했다. 그래피는 2021년 치과 제품 분야 세계 1위 유통업체인 미국 헨리샤인과 제품 공급 계약을 맺는 성과를 올렸다.

이랑텍도 2017년 설립된 소부장 전문 스타트업이다. 이동통신사 간 서로 다른 주파수 간섭을 제거하는 데 최적화한 솔루션과 고주파 저손실·저잡음 무선주파수(RF) 필터 기술을 개발했다. 그동안 수입 제품에 의존한 통신사용 네트워크 부품을 국산화한 것이다. 이랑텍은 개발한 저손실·저잡음 5G RF 필터를 국내 이통사에 공급한 데 이어 이스라엘과 일본에도 수출했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3’에서는 통화 품질 향상을 위한 가정용 초소형 중계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테크 스타트업 스마트레이더시스템은 자율주행 차량용 이미지 레이더 센서를 만든다. 미국과 이스라엘 기업이 독점한 자율주행차 및 산업용 4차원(4D) 이미지 레이더 제품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해외 경쟁사보다 네 배 이상의 고해상도 기능을 제공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미지 레이더는 각종 데이터를 이미지화하는 기술이다. 주변 사물의 각종 정보(거리, 속도, 각도)에 높이 정보를 더해 딥러닝 기술로 인식·처리하면서 정확한 주행 환경 파악을 돕는다.

○비산화 그래핀 등 신소재 개발

2021년 설립된 소울머티리얼은 전기차 방열 소재 등으로 쓰이는 마그네시아(MgO) 필러를 개발·양산하는 데 성공해 주목받고 있다. 마그네시아 필러는 전기차의 배터리 모듈과 하부 냉각 모듈 사이에 들어가는 재료다. 소울머티리얼이 개발한 마그네시아 필러는 일본 경쟁 기업 제품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케이비엘러먼트는 비산화 그래핀 개발 전문 스타트업이다. 그래핀은 반도체에 주로 쓰이는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전자가 빠르게 이동하고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흐르는 탄소 소재다. 비산화 그래핀은 물리적 박리 방법을 이용해 흑연의 원자층을 2차원 구조로 만든 그래핀이다. 케이비엘러먼트는 국내 최초로 비산화 그래핀 양산화에 성공했다. 그동안 독일과 일본 기업이 독점 제작한 소재였다.

스몰머신즈는 중소벤처기업부 지원을 받은 의료기기 전문 기업이다. 고해상도의 바이오 디지털 이미징 분석 시스템을 개발했다. 세포 시료를 넓은 면적과 고해상도로 촬영하고 관련 이미지를 인공지능(AI)이 자동으로 분석하는 시스템이다. 의료진이 신속하고 간편하게 각종 질환을 확인하는 것을 돕는다. 스몰머신즈는 세계 최초로 ‘다중광원 이미지중첩(FPM)’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구현하기도 했다.

○VC의 소부장 투자도 활발

국내 소부장 스타트업 성장에 벤처캐피털(VC)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소부장에 집중 투자하려는 VC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효성은 지난해 9월 자본금 100억원을 출자해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효성벤처스를 설립했다. 효성의 핵심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소부장 스타트업에 투자해 핵심 원천 기술의 국산화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VC업계 관계자는 “정부 모태펀드의 올해 첫 출자 사업에서 소부장 분야 펀드 조성액 목표가 500억원 정도였다”며 “정부도 소부장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는 최근 소부장 스타트업 5개사에 총 10억원의 자금을 댔다. 투자받은 곳은 전자파 솔루션업체 티엔에이치텍, 발열제 개발 기업 트윈나노, 텅스텐 정련 기술업체 베스트알, 패널 연식 가공 기술 회사 프레임웍스, 친환경 소재 기업 우드워드바이오 등이다.

스타트업 중심의 국내 소부장 산업은 앞으로도 성장을 이어갈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정부 지원 강화가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소부장 산업 지원 정책을 개선하겠다고 지난해 10월 밝혔다. 세부 지원 대상 산업은 국내 주력 산업에서 첨단 미래 산업으로 확장했다. 연구개발(R&D) 지원은 개별 기업에서 관련 생태계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소부장 공급망 확보가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 짓는 가장 핵심적 요소”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도 지원 사업 강화

소부장 산업은 오랫동안 축적된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혁신이 창출되는 고부가가치 분야다. 국가의 경제 발전과 안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소부장 산업이 주목받은 건 일본의 수출규제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2019년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생산에 필수적인 품목의 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 불만에 따른 대응이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정부는 국내 소부장 기술 자립을 위해 관련 산업 지원을 대폭 강화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0년부터 ‘소부장 스타트업 100’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엔지니어링, 복합소재, 융합바이오, 산업용 사물인터넷(IoT), 친환경, 반도체 등 여섯 개 분야의 업력 7년 이내 소부장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최근에서야 일본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 일본 방문에서 소부장 관련 수출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